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한강을 기적을 일구어냈던 장인정신입니다. 달랑 맨손으로 대한민국을 세계속에 우뚝 서게했던 것은 평생 근면과 성실로 한우물을 판 수많은 장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는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평생을 바치고 있는 장인들과 그들의 정신은 21세기에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전자신문은 21세기 신화창조의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장인들을 찾아 보겠습니다.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 그들의 노고와 고뇌, 그리고 성공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장인정신을 되살리는데 보탬이 되겠습니다.
탄소나노튜브.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와 산업은행은 포스트 반도체를 견인할 10대 신성장동력과 산업판도를 바꿀 미래기술로 ‘탄소나노튜브’를 각각 선정했다. 삼성전자도 10년후 주력사업으로 육성할 산업으로 ‘탄소나노튜브’를 선정하고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도대체 탄소나노튜브가 무엇이기에 세계적인 기업과 연구단체가 이 기술을 산업의 판도를 바꿀 기술로 꼽고 있는가.
탄소나노튜브(CNT)는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전기 전도도는 은과 비슷하고 강도는 철보다 100배나 높으며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테니스라켓 등 응용분야가 넓기 때문에 차세대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대학, 기업, 연구소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탄소나노튜브 연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최근 그 성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대학 교수와 연구소를 중심으로 CNT 연구에서 세계적 성과를 도출해 왔다.
그러나 연구소 수준의 개발과 상용화·산업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 한국에도 ‘연구실 속의 차세대’가 아닌 ‘생활에 쓰이는 차세대’를 만들기 위해 지난 10여년 간 연구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일진나노텍 유재은 박사(이사·42)가 그 주인공. 유 박사는 지난 2000년 독자 기술로 개발한 탄소나노튜브를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해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용 제품을 개발, 최근 일본 미쓰비시에 공급 계약을 채결했다.
유 박사는 나노기술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에 제품을 공급한 순간 그 동안의 실험실에서 흘렸던 땀과 눈물 그리고 실험실 사람들이 한 순간에 떠올랐다.
“연탄공장을 하시던 아버지가 가장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탄소나노튜브에 인생을 걸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가 탄소인 흑연을 배합해 어떨 때는 가스가 적게, 어떨 때는 많이 나오는 것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며 어릴 때부터 ‘탄소의 마술’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재은 박사는 국내 나노기술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때부터 탄소나노튜브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국내외 60여건의 탄소나노튜브 관련 특허를 출원하거나 보유하고 있다. 지난 99년 한양대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학연과정으로 ‘열화학 기상증착법에 의한 탄소나노튜브 합성에 관한 연구’로 국내 나노 박사 1호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2002년에는 탄소나노튜브로 대한민국 100대 특허기술대상을 받기도 했다.
유 박사가 탄소나노튜브에 올인(all in)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소재는 하나인데 응용분야가 다양하다는 매력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마치 만병통치약 같았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가 한국이 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분야였는데 CNT는 여기에 모두 쓰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복합재료로 이용 전자파 차폐에도 쓰이죠. 이런 소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으니까요.”
당시 유 박사는 동기들처럼 각 학교의 교수와 대기업 연구소의 연구원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연구와 산업화는 다르다고 판단, 지난 2000년 일진나노텍의 설립을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탄소나노튜브의 마술 때문에 곧 어려움을 겪었다. 개발은 했으나 매출은 없었다. 재료 벤처 회사는 투자에 비해 자금 회수 기간이 길고 산업이 본격화 되지 않은 경우는 개발 후에도 쓰이는 곳이 없어 힘들게 마련. 벤처 거품이 꺼지자 자금난에 부닥쳐 회사는 존폐의 위기에 몰려 설립 2년 만에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이는 외국에서는 복합체, 디스플레이, 반도체, 2차전지 등 특정 용도에 쓰이는 CNT를 각각 개발했으나 유 박사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일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 국내외 굴지의 대기업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줄 테니 오라는 제의도 받아 인간적인 괴로움에 직면했다.
“두려웠습니다. 만병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탄소나노튜브의 미래는 너무나 멀게만 보였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유망하다고 하지만 산업화의 전망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 박사는 곧 전자가 잘 튀어나오는 탄소나노튜브를 전자총으로 이용하면 평면 모니터가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또 국내 삼성SDI과 LG전자, 일본의 소니와 도시바가 탄소나노튜브를 이용, 전력소모도 적고 납작하게 만들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FED(Field Emission Display) 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구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FED는 이미 미군이 쓰고 있었다. 미군은 3년 전부터 탄소나노튜브로 5∼7인치 소형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사막, 정글의 군용 차량에 달았다. 전기도 적게 들고 고열에도 잘 견디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FED에 적합한 CNT 개발에 매진했다. 원천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특수용도 개발은 어렵지 않았다. 삼성SDI 등 국내 대기업과의 공동 연구로 인해 개발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현재 FED는 일본에 원천기술부터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원재료 업체와 소자 업체가 기술개발부터 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박사는 FED 외에 7세대 LCD 공정의 백라이트 공정에 필요한 새로운 램프와 전자파 차폐 등 복합 탄소나노튜브를 개발할 계획이다. 회사는 지난해 12억원의 매출에 이어 올해는 5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을 정도로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유재은 박사는 아직도 새벽 4시에 기상, 새벽 기도후 강서구 가양동의 가양테크노타운으로 출근한다. 예전에는 집에도 안 들어가고 회사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지만 요즘에는 가급적 집에 가려 한다.
“4년 전 이 곳 실험실에서 탄소나노튜브를 먹어도 보고 자제가 폭발해 불이 나는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은 다른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자금이 열악한 소재 벤처 회사가 세계적인 규모의 회사나 하는 첨단 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매출을 일으키고 기약 없는 미래에 투자, 인생을 건다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기술 선진국 일본에 기술을 수출하고 본격 매출을 일으켰다. 유재은 박사의 실험실 한 켠에 놓인 아버지가 만든 연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
◆ 유재은(柳在銀) 박사 약력
1963년 6월 4일생, 전북 정읍, 현재 일진나노텍 나노기술연구소장
학력 - 한양대 금속재료공학과 졸(87년), 동과 석사 졸(90년), 한양대 KIST 나노소재 학연과정 박사(99년)
경력 - KIST 금속연구부(90년), 일진그룹 비서실 사업기획단(99년), 일진나노텍 나노기술연구소(현재), 산자부, 과기부 나노기술자문위원회 위원(2001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나노기술정보 자문위원(현재), 나노산업기술연구조합 이사(현재)
수상 - 장영실상(98년), 100대 특허기술대상(2002년), 국내외 특허 60개 출원 및 등록(현재)
◆ 장인을 만든 사람들
유재은 박사는 가장 먼저 일진그룹의 허진규 회장을 꼽는다. 허 회장은 유재은 박사가 한양대, KIST의 산학 공동 박사과정을 이수할 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줬으며 그가 일진나노텍을 창업할 때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 매출이 없어 회사가 존폐 위기에 처했음에도 자생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 벤처 정신을 잃지 않도록 도와줬다.
삼성종합기술원의 김종민 상무는 90년대 중반부터 탄소나노튜브 기반의 디스플레이 연구에 앞장선 인물로 유 박사가 FED용 재료 개발로 특화할 수 있도록 이끌고 공동 연구개발을 주선했다. 한양대 나노공학과 이철진 교수는 유 박사의 은사로 나노의 세계에 입문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서울대 임지순 교수, 서울대 국양 교수, 포항공대 이건홍 교수, 연세대 백홍구 교수, 성균관대 이영희 교수 등은 유 박사가 탄소나노튜브와 나노기술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고 개발에 실패할 때 좌절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준 분들이다.
◆ 내가 본 유재은 박사
- 한상록 나노산업기술연구조합 사무국장
나노테크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자연인 ‘유재은 박사’ 보다는 ‘일진나노텍의 유재은 연구소장’이라는 복합어를 쉽게 떠올립니다. CNT(카본나노튜브)소재 전문기업인 일진나노텍의 창립이 유재은 소장의 열정과 확신에 의한 산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98∼99년만 해도 오늘날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CNT의 중요성에 대하여 기업이 예측하고 상용화를 목표로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유재은 소장은 미래기술혁신소재로서 CNT에연구결과를 토대로 미래를 확신했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숱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은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라 생각됩니다.
유재은 소장을 알게된 건 지난 2001년 가을 산학연 나노분야전문가들과 함께 나노산업기술연구조합 설립을 위해 ‘나노산업화포럼’을 가질 때였습니다. 당시 그가 CNT의 무궁무진한 응용분야에 대해 해외사례를 들어가면서 역설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참석자들은 CNT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됐습니다.
후일 알게된 이야기지만 선진국에 비해 늦은 연구개발시기와, 적은 자본, 인력 등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정열과 인내심으로 일했답니다. 월요일에 출근하고 토요일에 퇴근하는 생활인지라 월요일의 출근가방에는 서류대신에 속옷과 양말이 5개씩 들어 있었고, 지금도 그의 연구실 한쪽에는 간이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기술혁신연구를 하는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일이지만, 연구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해외에서 더 높게 평가됩니다. 달콤한 스카웃제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열악한 연구환경을 팀웍을 통해 극복하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품질의 CNT를 생산,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진나노텍이 ‘ILJIN CNT’라는 상표로 국내외에 알려진 것은 그의 연구소장으로서 능력과 좋은 인간관계 형성이 큰 몫을 하고있습니다. 또한 그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가리지 않고 예의를 지키고, 늘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뛰어난 유머감각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유재은 소장이 앞으로 나노기술 분야에서 그가 소망하고 노력한 대로 큰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장벽을 더 넘어야 하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 어딘가에 있어야만 하는 제2, 제3의 유재은 소장을 이 시대의 희망으로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