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진장관의 `IBM 옹호`

 ‘존재(存在)가 사고(思考)를 구속한다’

 누구의 말인 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기자가 곧잘 빌려쓰는 말이다. 자신의 삶이나 환경을 벗어난 생각이 나오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지나친 유물론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실제로 이런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지난 9일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그랬다. CES출장차 출국을 앞둔 이날 오전 기자실에 들른 진 장관은 오자마자 IBM의 R&D투자 유치건을 질문받았다.

 진 장관은 대뜸 IBM부터 칭찬했다. 진장관은 “나도 근무해봐서 잘 알지만 업무규칙 등을 보면 IBM은 도덕적으로 매우 엄격하다”면서 “(IBM납품비리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리점이 문제다”라며 IBM을 옹호했다. 심지어 진 장관은 “(IBM보다는)오히려 우리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도덕적으로 엄격한 기업마저 변칙을 쓰도록 만드는 우리 풍토에 분명 문제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부끄럽다는 진 장관의 발언은 너무 나갔다. 어쨌든 비리에 연루된 건 IBM 아닌가. 만에 하나 IBM의 R&D 투자에 미칠 악영향을 감안한 옹호 발언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진 장관은 IBM과 선진 기업은 어쨌든 투명하다고 보는 듯한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엔론사태에서 봤듯이 ‘썩을대로 썩은’ 미국기업도 많다. 다만 우리기업보다는 ‘로비’ 등의 이름으로 조금 공식적인 게 많을 뿐이다. 진 장관의 사고가 혹시 IBM과 삼성전자의 테두리를 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의문이 든다.

 정책 수장의 인식의 범위는 매우 중요하다. 산업에 관심이 많은 진 장관이 온 이후 정통부가 산업정책 외엔 뚜렷한 정보화와 통신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산업정책도 일부 다국국기업의 테스트베드 유치와 신성장 품목 선정 외에 뚜렷한 게 없다.

 같은날 같은 시각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룸의 한 경영자 세미나. 주제강연자인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은 “로마가 도로를 건설했고 칭기즈칸이 역참제를 만들어 세계를 재패했듯이 우리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말을 정통부 기자실에서, 정통부 장관의 목소리로 듣기를 바란다.

 <신화수차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