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자진 이탈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수입이나 사회적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살고픈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다. 글로벌화로 지구는 더욱 좁아졌고 결국 스피드만이 생존의 관건이 되고 있음에 반해 이들의 소망은 오히려 ‘(삶의)속도를 줄이는 것’이라고 한다. 외신은 이처럼 자동차 저속운전을 위해 기어를 변속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방식을 ‘다운시프트(down-shift)’로 부른다고 전한다.
2002년 한해에만 190만명이 빠른 속도를 요하는 직업이나 직장의 스트레스를 피해 직장이나 집을 옮겼고 1200만명은 급여삭감을 감수하고 적은 근로시간을 택했다고 한다. 지난 6년간 다운시프트족의 증가세는 30%에 이른다는 게 조사결과라 한다.
물론 그야말로 남의 나라 얘기지만 세계적인 기업의 CEO들은 이러한 다운시프트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소니의 매출을 능가하며 전성기를 이끌어 낸 구니오 나카무라 마쓰시타 CEO는 회장이 되면서 400여명의 사내 임원에게 휴대폰으로 모바일보고를 받는 등 스피드경영을 강조했다. 이미 90년대에 오늘날의 디지털TV 규격을 제안, ‘디지털TV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LG전자의 백우현 사장은 회사에서 생산되는 모든 시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고 제조현장에 반영되도록 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일반사람들에 비해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업무량과 시간에 쫓기는 세계적 톱경영인들이지만 그들에게서 관두겠다든가 하는 얘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글로벌기업 CEO들의 퇴진에 대한 변이나 배경은 어김없이 자신보다 더 나은 경영자의 등장으로 귀결되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삶을 질을 즐기고 싶은 욕구에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접어가면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경제에 대한 노력에 집중하는 이들을 ‘다시한번 (re)’ ‘보게(spect)’ 된다. 나카무라 CEO의 경우 회사를 파하자마자 독서를 하는 게 즐거움이라고 하는데 그 분량은 연간 200권이라고 한다 시간에 쫓기는 그가 다운시프트를 원할까.
<이재구부장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