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미국 업체들의 `귤화위지`

 ‘귤화위지(橘化爲枳)’란 고사성어가 있다. 회남에서 자란 귤나무를 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는 말이다. 처한 환경에 따라 본래의 우수한 형질이 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계 최대 IT기업인 IBM의 한국법인이 비자금 조성과 금품로비, 입찰담합 등 각종 납품 비리를 지난 수년간 벌여온 사실이 적발됐다. 미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관행으로 설명되는 국내 사업환경이 한국IBM을 한국화(韓國化)한 셈이다.

 최근에는 특정 장비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세계1위를 기록중인 미국계 LCD 장비업체가 우리나라의 한 장비업체를 대상으로 특허침해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기업은 대응차원에서 대만 공정거래위에 미국 업체를 제소한 데 이어 우리나라 공정위에도 제소를 추진중이다.

 국내 업체는 “미국 업체가 자사에 대해 특허침해에 대한 제소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 장비를 사용하는 고객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루머를 퍼트려 심각한 영업상의 지장을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공정위의 결정이 나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투명경영, 공정경쟁이 체질화돼 있는 미국 기업이라면 루머보다는 먼저 명확한 특허침해 사실을 근거로 법적 조치, 승부를 가려야 했을 것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긴 하지만 해외에서 들어온 반듯한 기업들마저 그 우스개 말을 따른다면 귤이 탱자가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번 특허논란에선 우리나라 반도체 및 LCD장비업체들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 적지않은 국내 업체들이 그동안 해외에서 영업활동을 벌이며 경쟁사를 비방하거나 훗날을 살피지 않는 제살깎기 경쟁 등으로 한국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켜왔기 때문이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인 셈이다.

 귤을 탱자로 만드는 것은 그 지역의 풍토 때문임을 인식하고 이제부터라도 국내 기업들은 상호비방, 금품로비 등은 근절하고 공정한 경쟁에만 몰두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산업부·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