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자동차의 고객상담원 김××입니다. 이은용 고객님 맞으십니까.”
최근 기자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다. 요즈음 어지간한 통신·가전·소비재 기업들은 ‘고객관리’를 화두로 삼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로 인한 내수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고객 접촉수단도 음성전화, 우편, 문자메시지, 전자우편 등으로 광범위해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컨택트(콜)센터, 인터넷, 데이터베이스(DB)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고객관계관리(CRM)솔루션이 기업 마케팅 전략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휴대폰으로 걸려온 고객상담원을 응대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그래서 기자의 대답은 “그렇소만”이었고 고객상당원의 활기찬 목소리는 “다름이 아니라 고객님께서는 96년부터 저희 회사의 △△차종을 운행하고 계시죠”로 이어졌다.
하지만 고객상담원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기자는 잘못된 정보로 접근해 온 전화에 “지난 2001년 ○○자동차의 □□차종을 새로 구입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줄 만큼 너그러운 고객이 아니기 때문. 이런류의 CRM은 ‘0점’짜리이자 스팸이다.
지난 2000년 이후 CRM은 기업정보화의 꽃으로 여겨졌다. CRM이 신규 고객 발굴은 물론이고 기존 고객의 이탈을 방지해 매출과 수익을 높여 줄 보물창고로 인식되면서 활황을 맞았다. 그러나 CRM을 현장에 적용한 후의 투자대비효과(ROI)가 불분명해지면서 지난해부터 시장이 나락에 빠졌다. 궁극적으로는 기업들의 매출 증대에 대한 너무 큰 기대와 성급함, CRM 전문업체들의 과도한 자신감이 CRM을 ‘계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올들어 CRM을 나락으로부터 건져올리기 위한 시도들이 하나 둘씩 이뤄지고 있다. 한국CRM협의회, 한국데이터베이스마케팅협회(KDMA) 등 유관 단체를 중심으로 객관적인 ROI 측정을 위한 표준화작업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도 DB, 데이터웨어하우스(DW),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등 CRM을 위한 정보화의 토대를 새로 다지고 있다. 이같은 노력들이 수렁에 빠진 CRM을 건져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