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장인을 찾아서](4)KCC 최근묵 박사

 ‘돌 하나에서 이룬 실리콘 합성의 꿈’

 요즘 KCC금강고려화학에서 TV와 신문을 통해 하는 광고 카피다. 도대체 실리콘이 무엇이기에 합성하기 위해 꿈까지 꾸어야 했을까.

 실리콘(Si)은 바다 모래와 돌에서도 추출할 수 있는 흔한 자원으로 규소(硅素)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이 소재는 우주항공, 자동차, 석유화학, 전기전자 등에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일반적으로 실리콘은 가슴확대용 성형 보조재료 관련 뉴스를 통해 알려져 있는 정도지만 석유로 치자면 원유(crude oil)에 비견될 정도로 중요한 자원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실리콘소재 연관 산업규모만도 수십조원에 이를 정도다.

 이렇게 중요하고도 다양한 소재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원천 기술 부족으로 인해 다우코닝, GE, 신에츠, 바커 등 외국 굴지의 업체들로부터 100% 수입에 의존해 왔다.

 이 소재의 국산화를 위해 남모르게 노력해 온 KCC 중앙연구소 실리콘합성팀 최근묵 박사(45)는 지난해 12월 23일 전북 전주 실리콘 양산 공장 기공식 때 남모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90년 KCC에 합류한 이후 오직 실리콘 양산만을 위해 달려온 14년의 젊음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

 그가 몸담고 있는 KCC금강고려화학은 그동안 주력인 건축 자재 및 도료 전문생산에만 매달려 온 기업. 하지만 20년전인 84년 실리콘 핵심 원재료인 모노머부터 완성품까지 풀라인으로 생산하자는 구상을 했고 8년만인 지난 92년 프로젝트 팀을 꾸려 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해 말 결실은 그동안 젊음을 바쳐온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 성과의 중심에 있었던 최 박사는 실리콘 합성에 성공하면서 세계에서 네번 째 모노머 국산화에 성공하고 양산에 이르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그는 그 긴 연구개발 시간만큼이나 컸던 보람을 얻기까지에는 그만큼이나 많은 사연이 숨어있다.

 “한번은 폭발사고 때문에 죽을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실리콘은 0.4g에도 폭발하거든요. 경기 용인 마북리 중앙연구소 건물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이 폭발사고 때문에 실리콘 합성 기술이 급진전되는 계기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직 노하우만 존재하는 합성 기술의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실리콘은 몇천억원대의 대규모 자본이 요구되는 산업이다. KCC의 전주공장도 4만여 평의 대지에 7개의 단위 공장이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는 실리콘 집적단지다. 회사 측은 3000억원을 투자했다. 연구 수준에서 개발하고 시험(파일럿) 설비를 만드는 것과 양산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장벽이 존재하기에 최 박사에게 양산 공장 건설은 큰 의미가 있다.

 “기존 개발업체들은 실리콘 원재료를 팔지 않았습니다. 2차 제품 생산만 하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원재료를 생산하지 않고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모노머를 생산하자고 건의했습니다.”

 일본 신에츠 공장 견학시 공장 도면을 머리에 그렸을 정도로 강한 의욕이 솟았다는 기억을 회고하는 그는 “한국의 초기 반도체 태동 시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박사가 기억하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연구소 수준의 개발에서 1∼5톤 규모로 시설을 늘릴 때였다. 연구개발만 진행하던 이전과는 달리 시험 생산 때부터 연구소 직원 20여명이 플랜트 설계에 들어가 1년간 24시간 철야로 근무를 했다.

 “그 때는 안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에 짓눌렸습니다. 연구개발만 10년을 했기 때문에 실패하면 사업을 접을 수도 진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연구소에서 수천번의 합성 실경험을 축적한 것이 큰힘이 됐는지 성공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이번 실리콘 합성 및 양산 성공은 연구개발(R&D)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한다. 가격과 품질을 앞세운 선진국의 파상공세에 대응해야 하고 고부가 제품도 내놓아야 하기 때문. 지금까지는 나만, 회사만 잘하면 됐는데 이제는 시장에서 성공해야 하니 더 힘겨운 과제가 놓여있는 셈이라는 얘기다.

 현재 연간 2만5000톤(실리콘 모노머 기준)을 10년 안에 4배 정도로 키워야 하는 것도 큰 과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원래 구상대로 세계적 실리콘 회사가 되기 위해 앞으로 15년 이상 더 걸릴지 모릅니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실리콘과 오직 한길만을 걸을 수 있기에 행복한 사람”이라며 한우물파는 장인의 굳은 의지를 피력했다.

◆ 최근묵 박사 약력

 1959년 12월 25일생, 충북 청주, 현재 KCC 중앙연구소 실리콘합성팀장

 학력:경희대 화학과 졸(87년), 웨스턴 일리노이(Western Illinois) 대학 석사 졸(89년), 고려대 KIST 금속재료연구실 학연과정 박사(97년)

 국내외 실리콘 논문 및 특허 50여개 출원 및 등록

◆ 실리콘이란 무엇인가?

 실리콘은 지구상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자원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모래속에 들어있다. 그 용도가 매우 다양하고 모든 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귀중한 자원이다. 석유 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합성 고무도 실리콘 고무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처럼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실리콘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정밀화학 산업을 집중 육성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반도체 칩이나 성형보조재로 이용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그 응용범위는 훨씬 넓다. 우주항공, 자동차, 화학/석유화학, 건축, 일반 소비제품, 전기/전자, 식품가공, 산업용 유지보수 제품, 기계, 페인트/코팅, 화장품/가정용품, 의료/제약분야, 플라스틱, 종이/필름산업, 섬유/가죽 등 그 영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KCC금강고려화학은 지난해 12월 2만5000톤 규모의 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7만5000톤 규모로 확장하고, 2012년에는 17만5000톤의 생산능력을 갖춰 세계 4대 실리콘 메이커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약 2500억원 이상의 수입 대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 내가 본 최근묵 박사

유복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2003년은 실리콘 모노머 생산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모노머 공장 준공과 더불어 ‘현대 산업의 조미료’라 불리는 실리콘 제품의 생산국으로 진입하는 이정표가 된 해라 할 수 있다. 최근묵 박사는 기존의 다국적 실리콘 회사의 생산공정 기술 독점과 견제하에서도 ‘하면 된다’는 신념과 부단한 노력으로 실리콘 제품 개발과정에서 겪은 숱한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고 KCC 내에 실리콘 생산공장을 완공시키는 데 헌신한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다.

 최근묵 박사와의 첫 만남은 10년전인 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CC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공동 연구개발 과제에 따라 최 박사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유기규소화학연구실)에 파견돼 인연이 시작됐다. 1년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고려대 학연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실리콘 분야에서 실리콘 화합물 합성공정 개발뿐 아니라 반응기전 규명에 이르는 폭 넓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함께 수행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학위과정 3년 동안 연구방향 설정과 반응공정 데이터 분석 및 처리를 위해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질의와 토론을 통해서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사석에서는 연구자의 자세, 생활, 자녀교육, 국내 실리콘 산업의 발전 방향 등에 대한 격의 없는 대화와 토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의를 다졌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최 박사는 학위 과정에서 새로운 합성법(알릴규소화 반응)을 개발하고 정립하는 데 일조했고 여러 편의 논문을 외국의 유수한 학술잡지에 게재했다.

 당시 최 박사는 일상적으로 오전 일찍 출근해 오후 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했고 흔하게 자정을 넘기곤 했다. 회사 복귀 후에도 실리콘 산업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굳건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선진국에 비해 적은 연구비·미약한 전문인력·장비 등 열악한 연구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일요일도 없이 불철주야 개발연구에 진력했다고 들었다.

 KCC의 실리콘 사업 성공은 다양한 첨단소재의 원료 생산국으로서 한국의 위상과 국내 소재산업 발전에도 기여한 바가 크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최 박사의 일편단심 실리콘 제품화 연구에 바친 정열과 집념이 불모지인 국내 실리콘 모노머 사업의 밝은 미래와 성공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장인을 키운 사람들

 제품이 빠르게 출시되고 시장 수명이 5년도 못가는 한국 산업의 형편을 고려해 봤을 때 무려 20년간 아무도 중요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기초 소재’ 생산을 위해 매달려 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KCC금강고려화학 정상영 명예회장의 뚝심은 가장 큰 원군이었다.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렸고 주변의 만류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전주 3공장 실리콘 집적단지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KIST 재료공학과 정일남 박사는 최 박사의 스승이다. 국내 실리콘 최고 권위자인 정 박사는 최 박사가 흔들릴 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됐다. KCC 전윤수 공장장과 김명호 부장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전 공장장은 실리콘 양산공장 건설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김 부장은 실리콘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최 박사와 함께 불철주야 연구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전주=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