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칼럼]정책 입안과 거품

 우리 사회 話頭 중의 하나가 ‘변화’다. 모두 ‘변해야 산다’라고 말한다. 정부도 변화를 강조한다. 지난주부터 대통령에 대한 각 부처의 업무보고가 계속되고 있다. 이미 재경부와 과기부·산자부·정통부 등이 대통령한테 업무보고를 마쳤다. 지금 우리 앞에는 난관이 많다. 하지만 각 부처의 업무내용이 계획대로 구현된다면 걱정할 게 없다. 국민은 ‘근심 끝’이요 행복 시작이다.

 업무보고 모습을 보면 과거에 비해 변한 게 많다. 보고형태나 분위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현안을 놓고 토론도 벌인다.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인쇄물이나 차트 대신 파워포인트로 업무를 보고한다. 변화를 실감하는 긍정적인 변화다. 보고의 형식, 즉 틀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내용은 과거의 그림자가 잔존한다. 각 부처가 수립한 새해 업무는 고심의 산물이다. 국민 의견을 수렴해 장기와 중기·단기로 나누어 계획을 세웠다.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도 정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백화점 나열식의 정책추진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 부처 모두 지난해 추진업무는 자화자찬이 많다. 또 새해 업무내용에 좋은 아이템은 다 모았다. 새해 업무 중에는 실현성에 의문이 가는 것도 있다.

 정책은 실천을 전제로 입안한다. 그러자면 조건을 구비해야 한다. 우리 나라 장관의 평균 임기가 1년여다. 대통령은 5년 단임제다. 몇 년 후를 목표로 예산도 확보하지 않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면 설득력이 없다.

 정부 재원은 한정돼 있다. 쓸 데는 많은데 항상 모자란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4조5000억원에 달했다. 우리 행정풍토는 장관이 바뀌면 정책도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정부가 이미 발표한 일부 계층에 대한 저축소비세 비과세 혜택확대, 근로자 정년연장, 출산장려금 지급·일자리 창출·실업난 해소책 등에 예산이 들어간다.

 정책추진에 예산이 받쳐 주지 못하면 구호성 정책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 재탕이나 선심성 정책은 안 된다. 지금 기업들은 기업투자환경 조성과 규제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발등의 불인데 이를 밀쳐 놓고 몇 년 후 정책만 남발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각 부처의 업무보고가 대통령한테 점수 따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한다면 그런 결과를 낳는다. 대통령의 눈과 귀는 각 두 개지만 국민의 눈과 귀는 수천 만개가 아닌가.

 실현성이 희박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원칙과 도덕성을 강조한 현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대통령한테 점수 따는 업무보고가 돼서는 안 된다. 국민한테 점수 따는 정책을 내놓고 추진해야 한다.

 구름 잡는 정책, 구태 정책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를 따른다. 애정을 갖고 정부를 의지하려고 한다. 정부의 변해야 산다는 게 구호로 그쳐서는 안 된다.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공직자가 국민의 박수를 받는다.

 새해 업무보고는 정책을 통합하고 조정하고 실천을 국민한테 약속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언어의 유희 장이 돼서는 안 된다.

 무너진 다리는 새로 건설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 간 신뢰의 다리가 무너지면 쉽게 연결할 수 없다. 말만 많고 실천에는 게으른 정부가 돼서는 안 된다.

<이현덕 논설주간 hd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