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2004`는 세계 최대의 전자 전시회답게 다가올 미래사회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사실 디지털 컨버전스는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소개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가까이 다가와 있어서 얼마든지 그 현상의 일단을 볼 수가 있다. 스캐너와 복사기, 프린터의 결합에서부터 휴대폰과 카메라, DVD와 VCR 등의 복합화, 융합화 등이 바로 그 예다. 또 게임기, 캠코더, TV 등의 제품들이 통합되고 있고, 심지어는 토스터와 전자레인지, 냉장고와 컴퓨터 등 주방기기들도 속속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통신, 가전, 컴퓨터 등 전자정보통신 분야 전체가 디지털 컨버전스의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곳곳에서 디지털 컨버전스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유독 이번 CES2004에서 눈에 띈 것은, 그것이 빠른 속도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비쿼터스는 디지털사회의 미래다. 모든 전자기기들이 복합화, 융합화되고 네트워킹 되면서 편리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구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시장이 새로 창출된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들이 기존의 제품들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기술이나 서비스를 복합해 서비스하는 `융합 비즈니스`가 21세기에는 주류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이 선명하게 드러난 CES2004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은 유비쿼터스 시대를 리드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이 시기에는 단순히 기술이나 제품만이 아니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파트너십(Partnership)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인식돼야 할 핵심자산이 바로 파트너십인 것이다. 말하자면 융합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가치사슬(Value chain)상의 제휴기업만이 아니라 업종과 성격이 다른 기업, 심지어는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과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타 업종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유비쿼터스의 시대에, 파트너십이야말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출발점이자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핵심역량인 것이다.
이제 한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모든 프로세스를 관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보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파트너십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더구나 디지털 컨버전스가 심화함에 따라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폭은 더욱 더 넓어질 것이므로 파트너십의 중요성은 몇 번이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디지털 컨버전스가 언제나 기회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흐름에서 앞서가지 못하면 곧바로 엄청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위기는 기회의 뒷면에 불과하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유비쿼터스의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이야기다. 때문에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설픈 파트너십으로는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파트너십을 리레이션십( Relationship) 정도로 오해하는 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 따위의 리레이션십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요소가 아니다.
이제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은 명약관화해졌다. 특히 전자정보통신 업계에서의 변화는 문자 그대로 하루가 다르다. 이러한 때에 기술에서 상당한 주도권을 가지게 된 우리 기업들이 파트너십 역량을 좀 더 높인다면 유비쿼터스로 표현되는 디지털시대의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해 본다.
◆ 우남균 LG전자 사장 namwoo@l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