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산업의 견인차인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올들어 천문학적인 수준의 마케팅 비용을 쓰는 대신 설비투자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이고 있다. 최근 통신시장 안팎의 변화가 워낙 심한 탓에 투자리스크 최소화라는 뜻이겠지만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나 산업 전체의 선순환식 발전을 위해서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마케팅 비용이 결코 좋은 신호로 해석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이 회사는 올해 마케팅비용으로 1조8360억원을 책정하면서 설비투자액 1조7000억원을 추월했다. 마케팅비용이 설비투자를 넘긴 최초의 사례이다.
기본적으로 투자는 해당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SK텔레콤의 시장지위를 볼 때 자연스런 현상은 아니다. SK텔레콤은 누구나 아는 이동전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이자 통신업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순익을 내는 기업이다. 후발 경쟁사인 KTF·LG텔레콤에 비해 매출액이 각각 2배, 4배 가까운 격차를 내고 있고 순익은 무려 5배와 20배의 현격한 차이를 벌리고 있다. 가입자 점유율로만 따지면 5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지만 내용적으론 비교할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국내 IT 산업을 견인, 성장시켜왔던 선도 사업자로서의 역할은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 대목이다. SK텔레콤의 우량 가입자 기반이 통신산업의 특성인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고, 덕분에 모든 사업자들이 실적난에 허덕인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구가했다. 하지만 올해 번호이동성 시차제가 시행되면서 당장이라도 큰 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이다. 경쟁사나 후방 연관산업계를 억지로 배려해달라는 말은 아니지만, 막대한 마케팅비용은 후발 사업자들을 출혈경쟁에 내몰게 뻔하고, 장비업계는 올해 또 다시 수주난에 허덕일 것이다. SK텔레콤에게서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는 힘’이자, 통신업계의 선발주자다운 큰 걸음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