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소프트웨어의 자존심 V3를 안철수 사장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반면 오늘의 V3의 성공신화를 만든 숨은 일등공신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다. 조시행 안철수연구소 이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조시행 이사와 안철수연구소의 인연은 9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철수연구소에 한글과컴퓨터가 자본을 투자하면서 한글과컴퓨터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조시행 이사가 안철수연구소로 파견됐다.
안 사장이 만든 V3는 당시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백신이었지만 공개 소프트웨어적인 성격이 강해 상품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임무를 맡은 것이 조시행 이사다. 3개월 동안의 파견 근무를 마치고 한글과컴퓨터로 돌아왔는데 함께 일하자는 안철수 사장의 제안이 왔다.
“제안을 받고 고민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 기준으로 좋은 직장은 개발자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그 일을 평생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안철수연구소는 그 기준에 딱 맞았습니다. 또 바이러스라는 놈이 개발자로서의 제 호기심을 자극한 것도 있습니다.”
한글과컴퓨터라는 안정된 둥지를 떠나 안철수연구소로 왔지만 상황은 열악했다. 조 이사를 제외하고 개발자는 고작 4명. 그나마 2명은 갓 대학을 졸업한 초보 개발자였고 다른 2명은 아직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부족한 인력을 메우는 방법은 단 하나, 성실성 뿐이었다. 밤낮없이 백신 개발에 매달려 최초의 상품화된 백신인 ‘V3프로’를 개발했다. 1년 후 V3프로에 이어 97년에 ‘V3프로97’을 완성했다.
“V3프로97은 제가 개발에 참여한 소프트웨어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입니다. 지금까지도 이 제품은 안철수연구소 백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V3는 부단한 기능 추가가 이뤄져 이제 오는 3월이면 V3프로2004라는 신제품이 나온다. PC용 제품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외국 제품에 뒤졌던 서버용 백신도 속속 개발돼 이제는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작년 3월에는 백신의 핵심인 엔진도 변경했다. 기존 워프(WARP) 엔진의 성능을 크게 개선한 플라이트(FLIGHT) 엔진을 만든 것이다. 워프 엔진은 파일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하나씩 검사하는 방식이었는데 플라이트 엔진은 한꺼번에 여러 개의 파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도스에서 윈도로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개발인력은 약 150명. 8년 만에 30배가 늘었다. 조 이사 혼자 하던 백신엔진 연구만 이제는 11명의 정예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
조 이사에게 민감한 질문을 했다.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외국 유명 백신 업체와 안철수연구소를 점수로 비교해 달라고 했다. 대답은 ‘70점 안팎’이다. 국내 백신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안철수연구소의 위상을 무색하게 만든다.
“백신 제품만 봐서는 V3가 외국 백신에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기술 인력의 차이입니다. 외국 백신 업체는 인력의 수도 많지만 훈련이 잘 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오면 이를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를 따라 잡는 것이 안철수연구소의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조 이사는 인력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작년 5월부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며 이미 절반 가까운 인력이 교육을 받고 업그레이드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조 이사는 어쩔 수 없는 개발자다. 벤처 거품이 불던 몇 년 전에도 사업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한다. 개발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면 백발의 개발자를 자주 봅니다. 제 꿈이 거기에 있습니다. 많은 개발자들이 경영에 나서거나 조기 은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기회가 주어지는 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조 이사는 이제 막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든 후학들에게도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개발자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자리이므로 ‘불가능은 없다’는 자세를 항상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는 아집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
“흔히 개발자는 고집이 세다고 합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들다 보면 처음 생각한 방향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향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에서 결정됩니다. 이를 항상 염두에 둬야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가 나옵니다.”
20년 가까이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조 이사는 지금도 안철수연구소의 개발을 이끌어가고 있다. 또 V3에 대한 ‘기른 정’이 각별한 국내 백신 개발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외국 제품에 맞서 국내 백신 시장이 지켜온 그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 조시행 이사 약력
◇ 1962년 경기 출생 ◇ 1984년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 동아건설(1984-1986), 쌍용정보통신(1986-1992), 한컴퓨터(1992-1995), 한글과컴퓨터(1995-1996), 안철수연구소(1996-현재) ◇ 1996년 정통부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 1998년 과기처 장영실상, 2000년 국회과학기술상
◆ 내가 본 조시행 이사
양왕성 한글과컴퓨터 연구소장
소위 소프트웨어 개발 1세대 가운데 아직까지 현업에 종사하는 인물은 손에 꼽힌다. 조시행 안철수연구소 이사는 그 가운데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발 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항상 후학이 본받을만한 모범적인 엔지지어다.
한글과컴퓨터에서 필자는 조시행 이사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초보 개발자였고 조이사는 이미 최고의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시행 이사는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시절 쌍용정보통신에서 ‘세종워드’라는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다. 한컴퓨터에서는 마찬가지 워드프로세서인 ‘사임당’을 만들었고 한글과컴퓨터로 옮긴 이후에는 ‘한(아래아 한)글’ 개발에 동참했다. 물론 조시행 이사의 최고 작품은 V3다.
같이 일했던 기간에 느꼈던 점은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남과 동시에 코드 등 세부적인 문제의 처리도 치밀했다고 기억한다. 전형적인 엔지니어이자 언제 만나도 친근하고 후배를 이끌어온 선배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도 개발자 출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V3를 안철수 사장이 혼자 만든 것으로 안다. 물론 처음에 만든 주역은 안철수 사장이지만 96년 이후 V3를 오늘의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조시행 이사를 시작으로 많은 안철수연구소의 개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유명한 안철수 사장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조시행 이사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조시행 이사는 개인적으로 개발자 가운데 존경하는 인물이다. IT업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업계의 발전에 더욱 큰 기여를 할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