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벤처투자 기본으로 돌아가자

올해 들어서서 벤처 업계의 화두는 절대적으로 인수합병(M&A)이다.

올해 2조 이상 만기가 돌아오는 프라이머리 CBO에 의한 벤처 업계의 자금난, 강화된 코스닥 등록 유지 요건 때문에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필요로 하는 상장 기업, 반대로 실적이 좋지만 강화된 코스닥의 등록 요건 때문에 등록이 어려워진 장외 기업, 금년에 만기가 돌아 오는 많은 벤처 펀드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M&A가 2004년도 벤처 업계의 주요한 탈출구가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도 많은 M&A 관련 자금을 준비하면서 작년 대비 적어도 50∼100% 이상 성장한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적어도 외견상 벤처 업계에 공급되는 자금의 규모는 2000년 이후 최대 규모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편향된 투자 추세로 인해 벤처 업계가 다시 한번 왜곡되어 가는 느낌이다. 벤처 업계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갖춘 신생 기업이 생겨 나고, 이 신생 기업에 대한 벤처 캐피털 투자를 통해 성장하게 마련이다.

  또 성장한 기업들이 상장 혹은 M&A를 통해 투자수익을 발생시킴으로써 투자자의 자금회수가 이루어지고, 이 자금 회수는 새로운 기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는 선 순환 사이클을 돌아감으로써 고용과 재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그 속성이다.

국내에서는 1998년 이후 코스닥의 활성화, 이를 기반으로 벤처 캐피털 업계의 급속한 성장 등의 과정을 거쳐서 아주 짧은 기간에 이러한 벤처 투자 사이클이 정립되었다. 그 짧은 기간 때문에 미국과 같이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정립된 시스템과 비교해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풀어 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벤처 캐피털 업계의 투자 패턴을 보면 이미 상당한 매출과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 혹은 직접 M&A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으로 치우쳐서 소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지나치게 편향된 투자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일부 선도 벤처 캐피털 업체에서는 앞으로 전망이 밝은 분야의 신생 기업에도 꽤 투자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업체의 흐름은 한 쪽으로 편향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갓 창업한 신생 기업,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가지고 나온 기업 등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지난 몇 년간 광풍같이 일었던 신생 업체에 대한 미친 듯한 투자 열풍의 반작용으로 시계추가 그 반대로 치우친 모양새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보아서 지금이라도 전망이 좋은 신생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벤처 투자의 사이클 상 유망한 기업의 공급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벤처 캐피털 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새로운 기술과 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서 2000년 이후 가장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분야에 투자를 시작해, 최근 와이파이(Wi-Fi)와 UWB등의 무선 분야, 전자태그(RFID), 소시얼 네트워킹(Social Networking), 홈 네트워킹 기기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신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

이러한 기본에 충실한 투자 패턴이 잘 정착되어야 벤처 업계의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 벤처 캐피털 업계도 이러한 원론적인 투자 원칙에 좀 더 충실했으면 한다. 몇 년전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기에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벤처 투자업계도 얼마나 많은 손해를 봤는지는 이미 통계에서 나온 바 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벤처 투자가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이 서로 살 길이란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 허진호 아이월드네트워킹 대표이사 hur@iworl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