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장인을 찾아서](7)인프라밸리 최염규 사장

 70년대말 사고 팔 수 있는 백색전화 한대당 값이 집 한 채 값에 달하던 시절을 넘어 이제 한해 1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수출하는 통신 강국. 변화된 한국의 통신 환경을 대변하는 말이다.

이같은 변화의 출발은 지난 83년 말 정부가 전자통신연구원(ETRI)를 주축으로 한 국산 전전자 교환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불과 20여년 전에 시작됐다.

국산 전전자 교환기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92년 국내개발 기종인 TDX시리즈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백색전화 신화(?)로 대변되던 전화 적체는 빠르게 해소 됐다. 물론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요소 요소를 퍼져 오늘날 통신강국 한국의 위상을 떠받드는 주춧돌이 되고 있다.

인프라밸리 최염규 사장(42)도 이중 한 사람이다.

“수백명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제가 그 개발을 주도한 것도 아니고, 단지 수백명 엔지니어중 하나, 그것도 대학을 갓 졸업하고 대기업에 막 입사한 새내기였을 뿐입니다”

스스로 대학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지난 85년초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참여했던 터라 ETRI 프로젝트에 큰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최 사장 자체가 국내 통신 역사 20년과 궤를 같이 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후 그는 삼성전자로 복귀, 국산 기술로 개발 구 소련에 수출했던 아날로그 셀룰러 기술 개발을 시작으로 무선통신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93년 현대 전자로 이직, 지능망, 부가망 개발의 총책임을 맡은 연구실장으로 재직하며 국내 이동통신 핵심 솔루션 개발을 주도 하며 엔지니어로서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

지난 2000년 10월에는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프라밸리를 창업, 이제는 HLR, 지능망 솔루션, 통화연결음 솔루션 등 이동통신 핵심 인프라 분야에서는 경쟁자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지난 20년간 한번도 바뀌지 않았던 일에 대한 저의 신조는 ‘일을 즐겨라, 즐길 수 없다면 좋아한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라’입니다”

창립 3년여만에 매출 300억원의 회사로 성장시켰지만, 아직도 직원들 중 회사 문을 잠그고 퇴근하는 횟수가 가장 많은 일에 대한 최 사장의 생각이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이 짓을 뭐하러 하나’는 갈등도 많았지만, 당시 그가 걷고 있는 길이 항상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한다.

최 사장이 가장 존경하는 CEO는 스타벅스 하워즈 슐츠다.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만나본적도 없지만,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았고, 선택한 일에 대해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점만으로도 존경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게 그의 말이다.

엔지니어다운 생각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 자기일에 대한 의욕, 애착…. 이 모든게’

최 사장은 연말쯤 인프라밸리를 주식 시장에 공개할 계획이다.

“여전히 회사를 기업공개(IPO) 한다는게 부담스럽니다. IPO를 통해 져야할 회부로부터의 부담, 엔지니어에 가까웠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또다른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욕심으로는 지금의 생활이 딱 좋지만, 회사의 미래, 같이 고생해 온 직원에 대한 배려 등을 고려할 때 한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면 IPO를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IPO를 통한 공모 자금은 대부분 4세대 기술 개발에 투자할 생각이다.

“기술로 앞서간다는 것은 항상 리스크를 동반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같은 리스크를 감안할 때 4세대 기술 개발도 벤처기업 CEO의 입장에서는 심각해 고려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벤처 기업의 규모상 잘못된 길에 대한 선택이라는 실수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가야만 하는 길이고 누군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엔지니어다운 생각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인프라밸리는 전형적인 기술 벤처다.

전체 직원 70명중 순수 연구개발(R&D)인력이 40명, 기술지원인력까지 포함하면 51명이 엔지니어다. 특히 기술인력 대부분이 7∼8년차 이상 시니어급 엔지니어라는 측면이 눈에 띈다.

회사의 외형에서도 알 수 있듯 그가 추구하는 인프라밸리의 모습도 양적인 성장을 통한 숫자 놀음은 아니다.

“인프라밸리는 목표는 매출만 늘어나는 회사가 아니라 신기술, 지적재산권 등이 늘어가는 회사입니다. 그동안 우리 회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모바일 인프라 분야에만 주력해 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짝 벤처들과는 체질부터 다른 회사로 성장시키겠다는게 인프라밸리에 대한 그의 고집이다.

이 같은 바탕위에서 지난해부터는 해외 진출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미 중국 차이나모바일에 자사 솔루션을 공급한데 이어 3∼4개국과도 수출 협상을 진행중이다.

인프라밸리는 이미 국내에서는 최고로 인정 받는 기업이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견실한 수익구조는 동종업계에서도 부러움을 나타낸다.

그러나, 정작 그가 생각하는 회사의 경쟁력은 인프라밸리의 기업 문화다.

‘유연한 조직 문화와 직원들에 대한 복지와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누구나 일하고 싶고, 들어오면 나가고 싶지 않은 회사’가 휴머니스트 최 사장이 말하는 인프라밸리의 청사진이다.

최첨단의 분야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사고. 최염규 사장이 보여주는 21세기 장인의 모습이다.

 ▲1962년 생 현재 인프라밸리 사장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1985년)

▲경 력:삼성전자 통신연구소 선임연구원(1984년)

현대전자 통신연구소 지능망개발팀장(1993년)

정보통신부 장관 과학기술상 수상(1997년)

우수벤처 발굴대회 산업자원부 장관상 수상(2002년)

디지털경쟁력 대회 산업자원부 장관상 수상(2003년)

◆내가 본 최염규 사장-박노성 시스코시스템즈 부사장

 최염규 사장은 벤처기업 CEO로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엔지니어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엔지니어가 천성인 사람인데 오히려 CEO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점이 더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94년 내가 현대전자 통신시스템 사업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차장이었던 최사장은 현대전자는 물론 한국의 이동통신 솔루션 시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중 하나일 것입니다.

당시 연구실장 시절 개발했던 무선 IN은 지금 3개 이동통신사를 전부 석권했습니다. 당시 일에 파묻혀 2∼3일 정도 집에 안 들어가는 것은 다반사일 정도로 일에 묻혀 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매사에 일이 최우선이었고 그런 그에게 회사에서도 무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벤처 창업을 할 때도 최 사장의 성실성과 노력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확신 또한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가질 수 있었던 확신입니다.

그러나, 노력하는 모습보다 더 그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항상 솔직하고 뒤에 어떤 계산을 깔고 있지 않은 사람. 주변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현대전자에서 같이 근무하던 팀원들간 팀웍은 최강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팀원들이 아무것도 없는 벤처 시장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최 사장의 성격은 그동안 직원이 70명으로 늘어나면서 새로 들어온 사람은 있어도 지금까지 회사를 그만 둔 직원이 단 한명도 없다는 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사람의 품성과 엔지니어적 열성이 설립 3년만에 매출 300억원의 회사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현재의 모습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더욱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기 위한 것보다는 끊임 없이 노력하는데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스타일 때문입니다.

인프라밸리가 한국, 더 나아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을 볼 때 인프라밸리가 그저 그런 벤처기업으로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홍기범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