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장인을 찾아서](8)손노리 이원술 사장

“앞으로 어떤 게임을 선보일 계획인가요?”

“좋은 게임이요!”

“차기작 설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자∼알!”

진지한 질문에 예상외의 간단하고도 엉뚱하기 짝이 없는 그의 답변은 상대방을 늘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나 당혹감도 잠시. 조금만 대화를 하다보면 누구든지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번뜩이는 재치를 가진 이 사람에 대해 몹시 궁금하게 된다. 게임에 대해서라면 누구한테도 지기 싫어하는 드높은 자존심과 불손을 가장한 게임산업에 대한 비딱한 시선도 신선하기만 하다. 그의 화법에 친숙해지면 게임업계에서도 그가 손꼽히는 풍부한 유모 감각을 지난 개발자라는 평에도 전적으로 동감할 수 있다.

“가상현실, 가상현실하는데 게임이 가상공간은 될 수 있어도 가상 현실이 돼서는 안됩니다.”

천편일률적인 현재의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 RPG)도 인간의 무한한 탐욕만 자극하는 게임이라고 비난하는 독설가 면모도 지녔다.

바로 그가 90년대 말 소프트맥스와 쌍벽을 이루며 대한민국 전문 게임개발사 시대를 활짝 연 손노리의 이원술 사장(30)이다. 손노리는 90년대 말부터 2001년까지 PC 패키지 게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악튜러스’, ‘강철제국’, ‘포카튼사가’, ‘화이트데이’ 등을 개발하며 국내 개발업계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해왔다. 2001년에는 플레너스(구 로커스홀딩스)에 합병돼 ‘카툰레이서’, ‘몬스터 꾸루꾸루’, ‘트릭스터’, ‘팡야’ 등 온라인게임을 개발한 게임사업부가 됐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다시 독립법인 손노리로서 플레너스에서 분리됐다. 이 사장은 스스로를 그래픽 디자이너로 출발, 게임 기획자에서 게임 프로듀서로 발전한 개발자라고 소개했다.

이원술 사장이 게임분야에 본격적으로 인생을 걸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2년 건국대 기계설계학과에 갓 입학한 방년의 이 사장은 게임 스쿨(학원), 게임동아리 등을 헤메다가 93년 소프트웨어개발업에 소프트라이 소속이었던 게임개발팀 손노리와 만나게 됐다. 일본 게임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중학생 시절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지금처럼 모양새를 갖춘 게임개발업체가 전무한 때여서 게임개발 지원과 유통을 맡아 줄 업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소프트라이, 데니암, 판타그램, 대기업 유통사 등으로 소속회사를 옮겨다니는 형국이었지만 게임개발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인생의 큰 낙이었습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게임개발중 발병한 결핵 때문에 군대 면제받기도 했죠.”

PC게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성공으로 97년 손노리 팬이 결성되기 시작했고 업계 최초로 게임 페스티벌인 손노리 페스티벌이 3000여명의 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화려하게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손노리 명성 뒤에 감춰진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당시 10만장 이상 팔린 히트작임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노동 조건 때문에 개발자들은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제대로 된 개발사를 설립(98년 손노리 법인 설립)하자라는 결심으로 이어졌다고 이 사장은 설명했다. 판타그램에서 만들었던 포카든사가의 경우 버그로 게이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에게 충격을 준 것은 인터넷 강국 코리아라는 명성(?)에 걸맞는 놀라운 불법복제술. 고생고생해서 2001년도 내놓은 야심작, PC게임 ‘화이트데이’가 출시 이전에 불법복제되는 비운을 맞았다. 피땀이 물거품으로 사라진 눈물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 사장은 이 땅에서 다시는 PC게임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됐고 손노리 팬뿐만 아니라 많은 게이머들에게도 이 사장의 발언은 뼈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근 이 사장은 또다시 고생 혹은 모험을 자청했다. 안정적인 재정기반이 됐던 플레너스와 지난해 12월 최종 결별한 것. 이 사장이 3년 전 플레너스 합병 당시 받았던 약 20억원어치의 주식도 독립법인이 된 손노리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플레너스에 사실상 반납하는 셈이 됐다.

‘플레너스 하우스’는 손노리가 재정적으로는 안정화되는데 도움이 됏지만 한편으로는 개발사의 근성이 사라지는 위기에 직면하됐다는 게 이 사장의 고민이었다. 인원도 80명까지 불어나는 등 비대한 조직규모도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결심하기까지 정말 괴로웠습니다. 술도 많이 먹었습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자신만만했던 이 사장이 그 때만은 적잖은 고민을 했노라고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두살배기 아이의 아버지가 된 탓에 ‘재정적인 안정’은 가장으로서는 쉽사리 버릴 수 없는 굴레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심을 굳히고 난 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며 금새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이 사장이다. 플레너스 손노리 게임사업본부는 현재 이사장이 이끄는 손노리와 김준영 사장이 이끄는 엔트리브 2개의 법인으로 나눠져 조직도 한층 가벼워졌다.

“지금 기분이요? 왠지 뭘 해도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 달리 무서울 것 없다는 이 사장의 낙관적인 사고는 그 옆에 가까이만 있어도 괜히 힘을 얻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다.

플레너스 합병 이후 엷어졌던 ‘엽기발랄’의 대명사 손노리 특유의 색채도 힘차게 살아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손노리 홈페이지(http://www.sonnori.co.kr/)에 가보라. 예전에 개발일정을 제때 못맞춰 게이머들의 원성을 샀을 때 게임잡지에 ‘지금 출산하면 산모(개발사)와 자식(신작 게임) 모두 위험할 수 있습니다’라는 기발한 광고로 위기(?)를 넘겼던 이 사장의 기지가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을 게임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게임 속에 재미와 정화(카타르시스)가 있어야지요. 국내에 나온 MMO RPG 중 이 두가지 요소를 갖춘 게임이 얼마나 되는 지 솔직히 의문스럽스럽니다”

“차기작이 어떤 게임이냐”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국산 온라인게임에 대한 비판이다. 게임산업이 발달된 미국과 유럽에서 볼 수 없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게임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절대 비밀’인 손노리의 차기작은 아무래도 MMO RPG는 아니라는 힌트이다.

인터뷰 초반, “‘좋은’ 게임을 ‘잘’ 만들겠다”는 그의 짧막했던 답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의 욕심대로 현재의 MMO RPG를 능가하는 온라인게임이 탄생한다면 대한민국 게임산업이 또한번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몇몇 온라인게임업체의 성공신화에만 도취돼 있는 국내 게임시장에서 신선한 자극제가 될 이원술 사장, 아니 개발자 이원술의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

*내가 본 이원술 사장-김정률 그라비티 회장

 이원술 사장은 게임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중학생, 아니 그 이전부터 학업보다는 남다르게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이었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나했던 사람이다.

이 사장이랑 알고 지낸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본인이 손노리팀을 데리고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장 결혼식 때는 주례까지 봤으니 사이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게임 업계에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동료로서 또 이 사장 결혼식 주례를 섰던 주례자 입장으로서 지금도 종종 부부 동반으로 친목모임을 계속 가져오고 있다.

 사실 이 사장은 손노리를 만든 인물은 아니다. 손노리라는 게임개발팀이 결성돼 있었고 이후에 이 사장이 합류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손노리팀에서 이 사장은 특유의 끼를 발휘하며 팀의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직장에서도 동료 사이에 의리맨으로 불릴 정도로 두터운 신뢰를 받았고 외유내강형이랄까,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가 상당한 인물이다.

이 사장은 탁월한 게임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들이 자칫 가질 수 있는 오만과 아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게임 그 자체를 이해하고 즐기는데 행복해했던 것 같았다. 벌써 수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이 사장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난, 그대의 게임에 대한 열정과 인간성에 반했다”

게임에 대해서 ‘문’과 ‘무’를 동시에 갖춘 사람이 업계에 얼마나 될까. 사실상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개발능력이 뛰어나면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고 반대로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면 개발력이 부족한 것과 달리 이원술 사장은 ‘문’과 ‘무’를 동시에 겸비한 게임업계의 재목으로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5년 후에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하고 또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