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에 주총 전운 감돈다

사외이사 선임,경영권 참여 관철위해 노조-소액주주 대규모 장외 투쟁

 ‘축제의 마당에서 투쟁의 장으로…’

 KT와 SK텔레콤 등 주요 통신업체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오는12일로 다가온 가운데 소액주주들과 노조 등이 사외이사 선임, 지배구조 개선, 경영권 참여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규모 주총장 투쟁을 준비하고 있어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KT의 경우, 작년 21기 주총에서는 민영화 이후 첫 번째라는 점을 강조해 인터넷 생중계와 광고 모델 팬사인회 등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올해는 소액주주와 노조가 사외이사 선임을 두고 집중투표제라는 정면승부수를 띄운 상태여서 마치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SK텔레콤의 주총은 예년 같으면 전년도 손익계산서를 의결하고 일부 정관을 변경하는 등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의례적인 행사였지만, 올해는 대주주 오너 일가 동반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에다 사외 이사 축소를 반대하는 참여연대가 주총 연기를 요구하고 있어 여러 모로 시끄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KT-노조, 사외이사 선임 정면 충돌=KT 노조는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모아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을 집중투표를 통해 실시하자는 청구서를 지난달 24일 이사회에 제출했다. 이어 KT 이사회는 정관상 집중투표제가 가능한 데다 노조측이 모아온 의결권이 집중투표 청구 요건인 1%가 넘는 만큼 이를 실시하겠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이번 KT 주총은 엄밀히 따져 우리나라 최초의 집중투표제라는 영예를 안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KT 이사회가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벌어질 노조와의 표 대결을 우려해 주총 선임 안건을 아예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와 그렇지 않은 사외이사를 분리했기 때문. 이는 결국 표 대결할 후보 수를 줄여 사실상 소액주주들의 집중투표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현재 KT 이사회와 노조는 이같은 의안 분리건이 적법한지 여부를 놓고 법리해석 싸움을 벌이고 있다. 상법이나 정관 등 어디를 뒤져봐도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먼저 선임해도 되는지 여부가 명확하게 표기된 조항이 없기 때문.

 노조측은 의안을 통합하는 공시를 새로 내지 않을 경우, 전국 조합원들을 모아 아예 주총 자체를 무산시킬 수도 있다며 어름장이다. 노조측의 한 관계자는 “소액주주와 노조의 경영 참여가 투명한 기업을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라면서 “주총 투쟁의 수위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KT 기조실 관계자는 “감사위원 사외이사를 먼저 선임하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판단이 내려 이같이 공시했다”면서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는 만큼 그대로 강행할 계획”이라고 말해, 정면 승부할 것임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KT측은 만약의 사태를 고려해 이번 주총은 지난해와 달리 인터넷 생중계 등을 실시하지 않을 예정이다.

 ◇SKT-참여연대, 대주주 퇴진 후폭풍=최태원·손길승·표문수 이사가 퇴진한 SK텔레콤의 이번 주총은 말그대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현안이 될 전망이다. 특히 당초 참여연대가 추천해 사외이사로 활동해오다 이번에 재추천된 남상구, 김대식씨가 표문수 사장 퇴진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무성한 터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SK텔레콤이 오너인 최 회장의 테두리에서 비교적 중도를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견제역할이 컸던 만큼 이번 주총에 앞서 두 후보의 중도하차하게 된다면 겉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참여연대는 이와 관련해 사내외 이사 수를 동수로 규정한 정관을 변경하고 주총을 연기해 줄 것을 SK텔레콤 이사회에 요구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최근 한 경제포럼에 참석해 “최태원 SK회장이 자신의 퇴진을 빌미로 SK텔레콤의 지배구조를 후퇴시키고 있다”면서 “남상구·김대식 사외이사가 물러날 경우 여러 수단을 사용해 저지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그동안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비교적 같은 행보를 보인 참여연대와 SK텔레콤이 결별을 선언할 수 있을 것으로도 예상된다.

 ◇투명경영 목소리 지속될 듯=이번 주총이 무산되면 SK텔레콤은 김신배 사장 내정자를 공식적인 대표이사로 선임하기 어렵게 된다. 이사회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선임할 수가 없기 때문. KT는 집중투표제 후유증을 놓고 노조와의 새로운 봉합이 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양사 안팎에서는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는 가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액주주나 노조가 모을 수 있는 의결권이 극히 미약하기 때문.

 LG투자증권의 정승교 연구위원은 “이번 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이나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더라고 이들의 경영참여와 견제는 날로 높아질 수밖에 없어 양사 경영진에게는 지속적인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