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IT정책의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정보통신 전반에 대한 허가와 규제 정책을 양손에 쥔 부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정통부가 지금까지 추진한 정책들 가운데 당초 정책 입장을 바꾸는 것은 예사이고 이미 확정한 정책마저 지연되거나 번복되는 사례가 잦다는 것이다. 사업자 선정이 6개월정도 늦춰진 휴대인터넷을 비롯해 지난해말 겨우 그것도 시늉만 낸 3세대 이동통신(WCDMA)서비스,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지상파위치정보서비스(LBS) 등 서비스관련 정책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주파수경매제와 무선랜 로밍은 2년째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고 단말기보조금 예외조항 등 신규 서비스와 제도 개선에 관한 예고성 정책이 남발돼 수요자인 기업들이 혼란스러워 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에따라 정통부의 정책 신뢰도가 의심받을 정도로 업계의 불신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입장이 번복되는 정책이 사업 추진 의욕을 꺾어놓기 때문이다.
IT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시장이나 산업 환경도 급변하는 현실 상황을 고려하면 정책 결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려는 정통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급한 생각에 상황 논리만을 앞세워 ‘땜질 처방’을 내놓고 뒷짐을 지고 있는 것보다는 정책 시행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역기능까지 꼼꼼하게 점검해 부정적인 요소를 극소화하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동안 정통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여론을 떠보기 위한 ‘애드벌룬’이 아닌, 일반인들이 보더라도 어느 정도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남들보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제품 개발을 해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정부의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시간전쟁을 벌이는 IT업체들로서는 얼마나 빨리 기술추세와 정책에 대응하느냐가 곧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정책이 지연되고 번복되는 것은 곧바로 기업에게 애로 요인이고 사업 추진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정부와 의견 조율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정보를 얻어 사업전략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대기업도 괴롭기는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중소·벤처기업들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정보력의 빈곤으로 사업기획이나 시점을 잡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이들 중소기업들로서는 정통부의 시책이 바로 금과옥조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모호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정책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치며 반발하겠는가. 물론 정통부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것이다. 정치적 논리와 급변하는 시장 상황을 고려하다 보면 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일도 생길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통부가 내놓는 정책 하나하나는 중소·벤처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생사가 달려 있는 문제인 것이다.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나 정책을 자주 바꾸는 것은 정책 신뢰감 실추는 물론 기업들의 경쟁력을 저해한다. 조령모개(朝令暮改)식의 정책 시행은 반드시 없애야할 구태이지만 정책 틀을 만들고 방향을 잡으면 소신대로 밀고 나가면서 추후에 보완하는 유연성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익집단의 힘에 밀려 눈치나 살피며 만들어 내는 그런 구태의연한 자세로는 IT강국으로 가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