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은 육지와 통할 수 있는 다리인 동시에 어획량 증대를 위한 선박간 통신수단이며 조난과 같은 비상시에도 긴요한, 말 그대로 필수품입니다.” 부산에서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부 L씨(52세)는 배에서도 휴대폰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선처해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번 바다에 나가면 길게는 보름씩 집을 비워야 하는데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휴대폰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대로’라면 앞으로는 배 위에서 휴대폰을 쓸 수 없다. ‘전파시행령 제30조 8호’가 ‘무선기기(소출력 중계기)를 선박에 설치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에서 휴대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선박용 휴대폰 증폭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위성전화의 10분의 1 이하 요금으로 통화할 수 있고 육지에서 최대 80km 떨어진 배에서도 휴대폰 통화가 가능해 강원지역과 부산지역 중소 선박들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보통신부는 “개인휴대업무는 육상이동업무이기 때문에 해상에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무선기기 설치는 사업범위를 벗어나며 특히 소출력 무선기기는 지하나 건물 등 옥내에 설치하는 경우에 한정하고 있어 선박내부에 설치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연근해 조업 어민들이 지금까지 선박에서 사용해 온 휴대폰 증폭기가 철거되는 것은 물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시범서비스까지 진행됐다는 데 있다. 어민들이 익숙한 휴대폰 대신, 사용도 어렵고 가격도 비싼 대체 수단으로 옮겨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비단 어민들과 관련 업체의 지적이 아니어도 정통부의 해석은 지나치게 법규에 얽매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어업협정, 감척, 어로한계선 등으로 어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휴대폰 사용금지 소식은 어민들의 어깨를 한층 더 무겁게 한다. “장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도치는 위험 속에서나 가족이 보고 싶어도 편지 한장 쓸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휴대폰 통화마저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한 어민의 말에 정부 관계자들은 무어라 답할 것인가.
<경제과학부·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