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우리 국민들은 당분간 대통령은 있지만 대통령의 업무는 수행하지 못하는 이른바 절름발이 정부를 지켜봐야 한다. 상대적으로 권한이 정지된 노무현 대통령은 오랜만에 중압감에서 벗어나 지난 1년을 되돌아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을 갖게 됐다.
노 대통령 스스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정책과 국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학습하는 데 전념하겠다”며 “특히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데 시간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지난 주말 ‘마거릿 대처’(고승제 저)나 ‘이제는 지역이다’(국가균형발전위 저) 등 대통령의 독서 리스트를 공개하는 등 탄핵 정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다.
하지만 일선 경제 부처와 재계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평소보다 훨씬 분주한 주말을 보냈다. 비상 연락망이 가동되고 해외 출장중이던 고위급 인사들이 급거 귀국하는 등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삼성·LG·현대 등 주요 기업들과 경제단체들도 지난 주말부터 이미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을 하는데 일선 부처와 기업들이 바짝 긴장해 뛰는 모습은 우리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권력’ 대신에 ‘자율적인 힘과 동력’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핵심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또 이번 탄핵정국으로 국민은 물론 노 대통령 본인과 참여정부 출범 이후 내세웠던 통치시스템 그 자체도 역사적 시험대에 올랐다.
참여정부 출범 후 노 대통령이 줄기차게 강조해온 것이 바로 정부 혁신이요, 분권형 리더십이다. 참여정부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구조에서 탈피해 부처 스스로가 ‘해야 할 일’과 ‘버릴 일’을 나누고 ‘새로 할 일’을 자율적으로 찾는 혁신적인 통치시스템을 추구해 왔다.
해당 부처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정책을 결정·집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노 대통령식 국가 통치시스템이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국민의 또다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