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는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여론이 냄비 속 죽처럼 들끓고 있다. 친노(親盧)니 보수단결이니 시끌벅적, 그야말로 ‘말의 설사(泄瀉)’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미 가마 타고 시집가기는 콧집이 앵글어져 애당초 틀어진 마당인데 이러쿵저러쿵 한 마디씩 삿대질은 해댄다. 숯이 검정을 나무라고 허청기둥이 칙간기둥 흉보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얼굴이 못 나 보인다고 거울까지 깨려들면 안될 일이다.
긴긴 불황으로 나라살림이 쪼그랑 밤송이가 되고, 내로라하는 나라 안 거상(巨商)들이 돈주머니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쪽박 찬 달머슴인 실업자들은 줄지 않고 있다. 어음조각들이 휴지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다니고 신용이 부도로 마분지마냥 너덜너덜,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들도 많다. 경제에 낀 먹장구름과 사방을 포위한 자욱한 불확실성의 안개에 갇힌 상단(商團)이나 민초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고철값도 망둥이처럼 뛰다 보니 엿장수 가위 만들던 풀무간도 남의 나라에 내다팔 물건마저 없어 아예 문을 닫아 걸 지경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기름값마저 덩달아 올라 엎친데덮친격이다. 우리와 이해 관계가 있는 주변국에서는 이번 사태가 나라의 살림을 거덜낼 정도로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지만 어디 경제라는 것이 예측했던 대로 되는 일인가. IMF사태를 맞았을 때도 우리경제의 기초체력이 탄탄하니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말했다. 하지만 끝내 그 예측은 빗나가고 모두들 삼척냉골 얼음짱 같은 빙하기를 맞아야만 했던 것이다.
기둥보다 서까래가 더 굵은 정치판에다 대고 제발 정신 좀 차려 주십사 일백 번 태평소를 고쳐 불고 신문고를 두드린들 기대할 게 별로 없다. 그렇다고 자포자기 하고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누워 잘 익은 홍시 떨어질 때를 기다릴 수만도 없는 일이다. 이번 탄핵소추는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정치적 쇼크이지만, 위기를 맞을 때마다 우리 민초들은 풀잎처럼 영롱한 이슬방울을 달고 슬기롭게 다시 일어섰다. 지금 우리 모두는 정치판의 소용돌이로 앞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몰라 불안에 휩싸여 있다. 어쩌면 밤하늘 광화문거리를 가득 적시며 일렁이는 촛불물결은 그런 불안감을 씻어내고 싶은 보상심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도 한 자루의 촛불을 켜고 차분하게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봐야할 때다. 격렬한 몸짓과 구호 대신, 차가운 머리와 이성으로 차분하게 나와 우리의 마음자리를 들여다보며 이 난국을 어떻게 흔들림없이 이겨나가야 할까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사회 심리적 요소가 경제의 흐름에 다분히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특히 이번과 같은 정치적 쇼크는 경제 주체들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해 실물경제에도 좋지 않은 파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은 또 다른 불안감을 만들어 낸다.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 살림을 한시라도 빨리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들의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정부는 소신 행정으로, 기업은 적극적인 투자로, 노동자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것으로 우리 경제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굴려 경제 숨통이 트이게 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것만이 주저앉은 우리 경제를 바로 세우는 근본적인 ‘종합처방’이기 때문이다.
<서용범 논설위원 yb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