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1대 황제 유비(劉備)는 제갈량(諸葛亮)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갈량은 후주(後主)인 유선(劉禪)을 보필하게 되었다. 위(魏)나라를 공략해 유비의 뜻을 받들어야 했던 제갈 량은 남만(南蠻)부터 정벌에 나섰다. 남만의 장수는 용감하기로 소문난 맹획(孟獲)이라는 장수였다. 제갈량은 노강 깊숙이 들어가 그를 생포했다. 제갈량은 남만족들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촉한의 무장 마속(馬謖)도 ‘용병의 도리는 최상이 민심을 공략하는 것으로 심리전을 펴 적의 마음을 정복하라’고 했다. 제갈 량은 마음을 사로잡고 나면 그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북벌(北伐)에도 용이할 것이라 생각해 맹획을 풀어주었다. 맹획은 전열을 재정비해 또 다시 촉군을 공격했다. 제갈량은 지략을 이용해 맹획을 사로잡았지만 또 풀어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에게 마음속으로 복종해 부하 되기를 자청했다. ‘칠종칠금’이란 고사성어는 이 사건에서 연유했다.
삼국지에는 다양한 전술과 이간책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얻는데는 ‘마음’이상의 술책이 없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음’은 상대에게 감복을 주고 진정으로 따르게 한다. 제갈량이 맹획을 얻기 위해 일곱번이나 잡았다가 풀어주는 노고를 아끼지 않은 것도 진정한 항복을 얻기 위해서다. 힘을 이용한 무력은 하책이다. 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으나 마음의 무릎을 꿇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반항과 배신’이라는 무서운 적이 숨어 있다.
탄핵정국을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회에서 표결의 승리는 있을지 몰라도 민심을 얻는 진정한 승리는 없기때문이다. 정치가 국민을 반항의 주체로 만들고 있다. 누구랄 것없이 정치권 모두 총선을 향한 당리당략에 민생과 경제안정은 뒷전이다. 공무원 사회의 산적한 일처리는 총선이후로 밀려났다.
정치 쇼로 어느 당이 아무개 당을 ‘칠종칠금’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칠종칠금’하는 정치는 없다. 국민을 ‘항복’이 아닌 ‘감복’으로 끌어갈 정치는 과연 없는 것인가. <이경우 디지털문화부 차장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