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통신서비스 경쟁도입 득실

 90년대 초 정부는 통신서비스산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통신서비스, 장비산업과 국민복지에 영향을 주었다. 이 정책에 따른 파급효과와 시사점은 무엇일까.

 우선 경쟁도입 과정을 간단히 보자. 지난 90년대 이전은 유선통신은 한국통신이, 무선통신은 한국이동통신의 독점체제였다. 경쟁체제의 도입으로 91년 국제전화사업에 데이콤이 참여하고, 92년 무선호출은 10개의 지역사업자가, 94년 이동전화에 신세기통신이, 95년 시외전화에 데이콤이 참여했다. 96년 PCS사업에 KTF, LG텔레콤, 한솔PCS가 참여하고, TRS, CT2, 무선데이터에도 경쟁이 도입되었으며, 97년에는 시내전화에 하나로통신이 참여했다.

 정부의 경쟁도입 이후 어떻게 변천되었는가. 국제전화에 온세통신, 하나로통신 등 별정통신사업자가 추가 참여했다. 무선호출은 이동전화에 눌려 사업이 매우 위축됐다. 이동전화는 3개사로 되었으며 TRS·CT2는 부진하거나 사업 철수, 합병했다.

 이러한 경쟁도입이 이해관계자들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첫째, 소비자에는 통신서비스의 급격한 향상이 이뤄져 세계 수준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누리게 했다. VDSL급의 인터넷을 이용하고, 이동전화도 단기간에 보유율이 급증했으며, 과거 보조금으로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기회도 있었다.

 둘째, 통신서비스 업체는 독점상태에 비해 부진한 수익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회사 설립시 대부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되어 사업 참여에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업종 대표기업들의 수익성은 양호하나, 상당수는 가격·비가격 경쟁이 심화돼 저조하다. 경제외적 논리에 의해 과잉 참가햇던 이동전화는 3개사로 구조조정돼 수익성이 개선됐다.

 셋째, 통신장비 업체들은 급격한 기술향상과 번영과 쇠락을 차례로 경험했다. 많은 서비스 회사가 설립되자 네트워크장비, 휴대폰, ADSL모뎀 등의 대량 구입이 이뤄져, 장비업계가 호황을 맞이했으며, 일부는 국제경쟁력이 있는 상품으로 발전됐다. 시간이 지나 서비스업체들의 투자재원과 장비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매출이 급감했다. 계속 호황을 누리는 품목도 있으나, 상당수의 업체가 문을 닫고 고전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동전화사업자 수를 초기에 소수로 했다면, 서비스 업체들의 수익성은 개선되겠지만 장비업체들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집단이기주의를 누르고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사회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이의 예로는 장비의 불필요한 투자, 조기 폐기를 줄이는 것이다. 휴대폰 구입 보조금 지불을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좋은 예다.

 또 세계적 제품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휴대폰의 사례에서 보듯이 초기 이 분야의 열등국인 한국이 당시에 주류이던 TDMA방식을 채택치 않고, 새로운 CDMA방식을 택해 이 분야의 기술을 선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즉, 초기 다소 열악한 국산품을 구입함으로써, 지속적 품질개선의 초석을 마련하여 오늘날 세계 수준의 제품을 탄생하게 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열악한 제품의 모방생산 성공·내수판매를 통한 규모경제 확보·지속적인 해외마케팅과 R&D, 생산성 향상·선순환의 확대 재생산을 통한 국제경쟁력 확보”라는 ‘국제경쟁력 있는 제품의 전형적 발전단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신제품에 대한 데스트베드 역할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마지막으로 고부가가치 핵심통신부품이며 절대적 수입초과품목인, 낙후된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의 개선 방향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성공적인 비메모리칩이 탄생되려면 다방면의 고급인력이 장기간 설계,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 위험도도 높으며 자본이 많이 소요되나 성공시 퀄컴, 시스코의 경우에서 보듯이 극히 수익성은 높다. 국내외 한국 기술자들을 보면 비메모리산업을 위한 설계능력은 있다. 문제는 이들이 흩어져 있고, 이를 장기간 지탱해줄 조직이 없는 것이다. 정부에서 사업 수행과 신뢰성 주는 대형조직 탄생을 지원한다면 큰 발전이 있을 분야다. 단, ETRI와 같이 연구개발에만 치중치 않고, 개발 후에도 지속적 마케팅과 칩 업그레이드를 하는 기업가적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이어야 하겠다. 대만이 비메모리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정책적인 배려가 많이 작용했다. 최근 삼성이 비메모리 공정기술 개발을 위해 IBM과 손을 잡은 것도 성공적 비메모리 개발에 도움이 클 것이다.

만약 한국 통신서비스에 경쟁체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소 낭비는 줄일 수 있었겠지만 오늘과 같은 IT강국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얼랑시스템 박원구사장 wkpark@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