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마케팅 이벤트는 필요없다?

 “우리는 제품의 기술과 디자인으로 승부한다.”

 전세계 정보통신 업계의 최대 이벤트인 ‘세빗2004’에 참석한 국내 중견 휴대폰 제조업체의 CEO가 내뱉은 말이다.

 기술력으로 국내에서는 꽤 알려진 이 기업은 당초 부스내 이벤트를 구상했다 CEO의 지시로 이벤트를 취소했다. 또다른 중견 휴대폰 업체도 대규모 부스를 마련, 전시회에 참여했으나 시연회조차 갖지 않고 제품만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관람객들의 발길이 뜸했음은 물론이다.

 반면 4인이 연주하는 LG전자의 ‘조그만 음악회’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바이올린 등 현대 악기로 아리랑 등 우리 전통가락을 연주한 이 회사의 이벤트는 이국의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여기 저기서 디지털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졌고 간혹 탄성도 터져나왔다. 삼성전자는 아예 ‘삼성’이란 이름만으로도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하이엔드 휴대폰 메이커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삼성전자의 제품 자체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중견·중소업체들에게 해외 전시회는 세계 시장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 휴대폰 산업측면에서 보면 ‘삼성이 휴대폰 강자’가 아닌 ‘한국이 휴대폰 강국’임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시선을 끌어모을 수 있는 변변한 이벤트 하나 마련하지 않은 우리나라 중견·중소 업체들에 누가 눈길을 줄까.

 이 중견업체 CEO의 기술 지상주의가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옆에 세계 최강 노키아의 부스가, 독일 최대업체 지멘스의 부스가 있는 상황에서 이들보다 더 솔깃한 ‘관람객을 끌어들일 무기’가 없다면 누가 관심을 두겠는가.

 이 CEO는 “우리는 유럽 공략에 자신있다”며 그 근거로 “유럽에서 한국 휴대폰이 고가라는 인식이 이미 뿌리내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에는 삼성 휴대폰이 고가라는 인식’이 있는게 아닐까 싶다. 브랜드 인지도 약한 중견·중소업체에게 해외전시회는 잠재고객과 만나는 가장 쉬운 접점이다. 이를 진정한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아쉬웠던 ‘세빗2004’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