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통신사의 장비 관련 납품 비리가 또다시 IT업계를 강타했다. 대형 통신사의 전임 회장과 임원 등 관련자 22명이 납품업체로부터 20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장비구매 과정에서 특혜를 주고 고가로 구매해 회사에 1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거나 입건됐다.
이번 사건은 벌써부터 경찰청의 내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지면서 어느 정도는 예고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는 IT업체들은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대형 통신사들이 장비 납품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전자입찰이나 종합점수제를 들고나온 상황에서 터져나왔다는 점도 그렇고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IT업계의 비교우위론이 먹혀들지 않는 것에 더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눈치다.
업계 관계자들은 차제에 이번 장비 납품 관련 비리와 같은 사건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입찰가 사전 담합, 기술평가서 사전 조정, 지정업체 끼워넣기 등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는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는 여건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와 법규를 만들어 본들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존의 전자입찰시스템이나 최저입찰제를 보완한 종합점수제 등을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으로 확대·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입찰시 외부인을 선정위원회에 넣어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시스템 확보는 물론 법규를 어겼을 경우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드세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자체 자정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아무리 법과 제도를 잘 만들어도 이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한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장비구매업체와 공급업체인 갑과 을이 ‘짜고 치는‘ 이상 사실상 비리 적발은 불가능하다. 외부인을 장비선정위원회에 넣는다 해도 사전에 기술평가작성 단계에서 ‘일‘을 마무리하면 아무 성과가 없다.
모두가 사후약방문격이다. 법제도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업계 자체의 자정 노력을 기대해 본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