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에서 “형님, 아우” 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은 두 나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상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부시 대통령은 사전에 알 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에 대한 보고를 묵살했다가 ‘9·11’이 일어나자 알 카에다와 이라크를 연계시켜 무리하게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는 위기의 사전조작 여부로 비난받고 있다. 또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도자 아메드 야신을 폭살해 나라 안팎의 비난을 감수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가 특별회의를 소집해 53개 위원국 가운데 32개국이 이스라엘 비난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미국은 반대했다. 오히려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몰기도 했다.
최근의 상황으로 비추어 마치 ‘날 때부터’ 동고동락을 했을 것 같이 생각되는 두 나라는 트루먼 대통령이 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신속하게 승인했다고는 해도 처음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다. 50∼60년대 이스라엘은 프랑스·독일과 가까웠고 건국 후 일정 기간은 놀랍게도 소련으로부터 군사지원을 받기도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50년대부터. 67년 이른바 ‘6일 전쟁’ 이후 존슨 대통령이 이집트가 주도하는 친소 아랍동맹국들에 대항해 이스라엘과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써 굳건해졌다. 산유국들이 몰려 있는 중동지역의 패권이 소련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미국측의 구애로 이스라엘과 미국은 맹방이 돼 버린 것이다.
이 두 나라의 정상에게는 힘을 자제할 줄 몰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힘에 대한 과신이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분석도 과히 틀린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본래 힘이라는 것은 감춰졌을 때 한층 더 ‘힘’을 발휘하는 속성이 있다. 힘의 위협은 신화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며 외부로 드러난 힘의 실체는 상대방에게 안도감을 줄 수도 있다.
주일학교에 다녔을 부시 대통령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신약성경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유태인 샤론 총리도 지금쯤은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성경구절을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경제과학부·허의원차장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