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힐튼호텔에서는 오랜만에 제조와 유통·물류 업계 최고 경영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차세대 선진 기술로 떠오른 전자태그(RFID)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접목할 것이냐라는 주제의 포럼이었다. 하지만 정작 주된 관심사는 경기 회복 시점이었다.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토론이 이어진 가운데 압권은 여자 골퍼와 국내 산업계를 빗대 농담이었다. 우스갯소리였지만 뼈 있는 비유가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주제는 ‘왜 한국 여자 골프가 세계 무대에서 강할까’였다. 우선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글로벌 경쟁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IMF 외환 위기 훨씬 전인 지난 90년 초부터 이미 글로벌 경쟁에 익숙하다 보니, 즉 큰 물에서 놀다 보니 선수의 기량이 자연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누렸다는 것이다. 소렌스탐, 캐리 웹 등 빅 플레이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 선수도 피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 원리를 빗대 거친 도전에 살아남기 위해 강한 기량을 쌓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결국 여자 골퍼를 강하게 했다는 다소 철학적인 해석까지 덧붙였다.
더욱 걸작도 있었다. 바로 여자 골퍼를 규제하는 정부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런 간섭과 규제 없이 오직 시장 논리에 맡겨 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쌓았다는 설명이다. 만약 여자 골퍼를 전담하는 정부 기관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다소 비약적인 주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대부분의 참석자는 이 우스갯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를 앞두고 연일 내수를 살린다는 명분에서 소비자와 산업계의 입장을 오가는 육성과 규제 정책이 ‘당근과 채찍’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제 특소세를 인하하는가 하면 오늘은 경품을 제한하고 협력업체의 관계를 새롭게 정비한다는 다소 상반된 정책이 제시돼 정책 의도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산업계의 바람은 하나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남발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스런 시장 논리에 맡겨달라는 것이다.
<디지털산업부=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