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4·15총선에서 밀려난 이공계

 17대 총선에서 IT와 과학기술계를 포함한 이공계 출신 인사들의 ‘여의도’ 입성이 극소수에 그칠 전망이다. 관련분야 입법활동도 두드러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1일 마감한 총선 출마 후보자들의 면면과 각당의 공약 내용은 이런 예측이 빗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등록한 후보는 1200여명 정도이지만 이공계 출신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25명 내외라고 한다. 실제로도 이런저런 후보를 다 포함하더라도 그 비율은 4%에 못미친다는 자료도 있다. 게다가 당선권을 전제로 한다면 그 규모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장차관 등 관료출신을 빼면 입법활동에 적극 나설수 있는 순 이공계는 더욱 자리가 좁아든다는 것이다.

이공계 출신의 진출이 극소수일 것이라는 전망은 당장 비례대표 후보 면면에서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비례대표의 전문성은 정당의 정책능력을 따지는 최고 척도이다. 하지만 비례대표 정수(56명)의 70%를 차지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경우 이공계 후보는 고작 3명이다. 15명 정도의 당선을 장담하는 한나라당도 2명 수준이다. 그나마 제2당인 민주당은 아예 보이질 않는다.

이공계 출신 의원수가 뭐 그리 중요하냐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현재의 여론 추이를 보면 이번 총선에서는 지역구·비례대표 모두 포함하여 10명 안팍의 이공계인사가 국회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5명 정도에 불과했던 16대 보다 훨씬 나아진 상황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25%는 IT를 포함한 이공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공계 출신 의원들이 의원정수의 25%인 70명쯤 돼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꼭 이공계 출신이어야만 IT나 과학기술 분야 입법활동이 가능하리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이공계 전문가들이 국회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이공계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21세기 과학기술입국’이나 ‘한 단계 높은 IT강국 업그레이드’와 같은 구호를 외쳐왔다. 이렇게 가야만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구호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여·야를 떠나, 산학연관에 관계없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해 온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요즘 들어서는 사회 전반에 이공계기피와 디지털문화 병리현상 등이 두더러지면서 과학기술입국이나 IT강국에 대한 정책적 보완은 당면과제 중의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임하는 각 당은 모두 교묘하리만큼 이런 과제들을 피해가고 말았다. 언제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졌었냐는 투이다. 이공계 후보군이 빈약하다보니 각 당이 내건 총선공약도 보잘게 없다. 각 당마다 내세운 이른바 ‘10대 공약’이라는 것을 보면 적어도 큰 항목에서 과학기술이나 IT라는 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청년실업, 민생안정, 사회복지, 여성, 교육, 환경 등만 난무할 뿐이다.

물론 이런 사회적·정치적 이슈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이런 전략은 차라리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정치안정과 경제살리기에 주력하려면 당선가능성과 정치적 투명성이 높은 후보가 우선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 진입의 관건인 ‘과학기술입국’과 ‘IT강국 업그레이드’는 언제까지나 ‘미래의 과제’요, ‘정책적 후순위’로 남아 있어야하는 것일까. 이공계가 선거가 치루기도 전에 실망부터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공계의 17대 국회에 대한 소망이 한낱 꿈으로 끝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당은 지금부터라도 세부 공약에서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