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오른 FTA와 ‘속도’ 조절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1일부터 발효됨으로써 우리나라도 마침내 본격적인 FTA시대를 맞게 됐다.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자유무역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물론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이번 한·칠레 FTA 발효로 우리나라는 폐쇄적인 교역국가라는 세계 각국의 따가운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뿐만 아니라 중남미 시장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교두보까지 구축하게 됨으로써 이 지역 국가를 겨냥한 수출 발걸음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FTA 발효에 발맞춰 칠레는 물론 우리 업체의 마케팅 행보도 급속하게 빨라지고 있다. FTA 비준 지연으로 빼앗겼던 시장을 되찾기 위해 전자업체를 필두로 자동차업체들도 판매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FTA를 단 한 건도 체결하지 못해 수입국들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칠레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FTA 비준 통과 지연으로 작년 한 해에 수출 차질 금액만 265억원에 달할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우위를 지키고 있던 휴대전화와 컬러TV, 전자레인지 등 한국산 가전제품의 점유율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13%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FTA 비준 통과 이후 우리 기업들의 끈질긴 마케팅전략이 주효해 최근 휴대전화 등 IT제품의 판매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하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FTA를 체결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세계적인 대세이다. 우리 정부는 칠레에 이어 일본, 싱가포르 등과도 FTA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손익을 따져가면서 협상하겠지만 단순하게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개별 국가끼리 FTA를 맺을 경우 자국 산업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철저한 파악은 물론 국가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 등 총체적이고 균형이 잡힌 사고와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국과의 주요 통상 협상을 벌일 때마다 여러 차례 미숙함 노출해 국민들로부터 빈축을 사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한·일본, 한·싱가포르 FTA 협상에 앞서 산업별 영향력과 민감도 등을 철저히 분석해 협상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재계 일각에서 한·일FTA의 추진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원천기술을 일본에 의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산업을 비롯한 자동차, 기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의 거센 공세를 제대로 버텨낼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점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FTA가 한·칠레처럼 국가간 산업이 보완적인 관계로 ‘윈-윈’할 수 있는 경우에는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재계의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한·일FTA가 장기적으로 국내산업의 구조개편과 경쟁력 강화를 촉진시켜 우리 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준다는 주장도 전혀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한 번 잠식당한 시장은 회복하기가 무척 힘들 뿐 아니라 입지가 좁아진 국내업체들에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정부는 일본을 포함한 타국과의 FTA협상 때 개방 여론에 떠밀려 성급하게 대처하느니 지금부터라도 철저한 준비로 협상력을 갖춰 대탐 소실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