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장인을 찾아서](13)XL게임즈 송재경 사장

후진국의 꼬리표를 떼지 못했던 게임분야에도 마침내 ‘패러다임의 전환’ 국면이 왔다. 비디오·PC게임 어느 분야에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한국이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의 이미지를 쌓으며 쉼없는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전환점에는 ‘특급 슈퍼 프로그래머’ 송재경 XL게임즈 사장의 등장이 있었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발전은 기존 방식을 깨뜨리는 혁명적인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며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했던가. 송 재경 사장이 만든 ‘바람의 나라’‘리니지’ 등은 당시 주류게임과는 전혀 다른 컨셉인 온라인게임이었고 그래픽,액션 등으로 승부하던 게임의 법칙에 ‘커뮤니티성’이라는 새롭고도 (몇년후) 절대적인 기준을 추가했다. 특히 ‘리니지’의 눈부신 성공은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한국 게임개발의 과거와 단절하고 세계 시장을 넘보게 되는 세기적 전환을 이뤄냈다.

 지난 1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수서역 부근 오피스텔, 신생 게임개발사 XL게임즈에서 송사장이 반갑게 얼굴을 내밀었다. XL게임즈는 지난해 초 엔씨소프트를 떠난 그가 직접 설립한 게임회사. 마침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동고동락하는 개발자 8명도 우르르 나왔다. 송 사장은 “오늘이 회사(XL게임즈) 설립한 지 1주년 되는 날이네. (개발자들을 보며) 여러분, 내년에는 우리 돈 좀 벌어 봅시다”며 기분좋게 웃었다. 그에게는 일종의 ‘자기최면’이었다.

 열정을 ‘밥’ 삼으며 집이 회사요, 회사가 곧 집이 되는 듯한 묘한 풍경을 보면서 넥슨이나 엔씨소프트 초기에도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짐작이 갔다. 송 사장은 마치 프로그램 한줄한줄을 짜나가는 듯 논리정연한 말솜씨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송 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 전공(86학번)때부터 프로그램 개발에는 재능과 관심이 남달랐다.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씨와 친하게 지냈던 것부터가 그랬다. 두사람은 과 동기인데다 입학전부터 모두 프로그램 언어에 익숙해 있었다.

 KAIST 박사과정 시절부터 그의 행적은 말 그대로 한국 온라인게임 10년사로 봐도 될 듯하다. 그가 참여했던 삼정데이터시스템의 머드게임 ‘쥬라기공원’은 94년 최초 상용게임(천리안서비스)으로 마리텔레콤의 ‘단군의 땅’과 함께 온라인게임의 효시가 됐다. 지난 95년 송사장이 넥슨에 조인해 내놓은 ‘바람의 나라’는 문자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머드게임에 그래픽까지 입혀 ‘세계최초 그래픽 머드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97년 말 완성해 개발한온라인 롤플레잉게임 ‘리니지’는 송 사장 자신도, 국내 게임산업환경도 완전히 바꿔놓았다. 송 사장이 병역특례 시절 아이네트에서 개발한 리니지는 턴제 방식에서 벗어난 실시간 전투로 오늘날 온라인게임의 전형 마련하는 시초였다. 아이네트가 어려워져 스폰서를 찾느라 전전긍긍했던 송 사장은 당시 막 창업한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과 의기투합했다.

 그때부터 본편은 시작됐다. 95년에 발표한 ‘바람의 나라’는 연매출 650억원의 넥슨을 일으키는 기틀이 됐고 ‘리니지’는 엔씨소프트를 단박에 주식시장의 황제주로 등극시켰다. 이후 수많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과 거대 투자자들이 온라인게임개발에 뛰어들었다. 온라인게임 문화가 이 시대 조류읽는 키워드로 부상했으며 사이버 경제 시스템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시작됐다. 심지어 범죄조차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경찰청에는 사이버수사대가 가동될 정도였다.

 그뿐인가. 마침내 우리나라 정부는 2007년까지 세계 5대 게임산업강국이라는 ‘당찬’ 구호를 달성가능한 목표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모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기술이 가져오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는 이 사회가 왜 이토록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두려워하는지 역설해주고 있다.

 자신의 영향력과 파장에 대해 송 사장은 거듭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송 사장은 “보통 인터뷰하면 뭔가 드라마틱한 사연을 원하는 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묵묵히 게임개발했던 기억밖에 없네요”며 멋쩍어했다. 한창 때는 하루에 3만줄씩 프로그램을 짜곤 했었다.

 그러는 송사장도 “요즘들어 실력있는 인력들이 게임 분야에 포진해 있다는 점은 솔직히 흐뭇합니다. 제 동기들만해도 대기업이나 유학을 떠나는 부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처음 게임개발에 참여했을때 좋은 사람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였구요. 그러나 요즘은 왜 ‘서울대’씩이나 나와 게임개발하냐는 말은 잘 하지 않죠. 제가 게임업계에 남긴 일이 있다면 바로 그점이 아닐까 합니다”라고 말했다. 인력의 대전환, 이를 통해 한국게임산업의 체질을 바꾼 것이 송사장 자신과 당시 힘들게 뛰었던 동료들의 공로라는 설명이다.

 지난 2000년 7월 코스닥에 성공적으로 등록한 뒤 엔씨소프트의 목표는 곧바로 세계 시장 진출으로 이어졌다. 2001년 ‘울티마온라인’이라는 온라인게임을 개발한 미국인 개발자 리처드개리엇과 그의 형 로버트개리엇을 영입하자고 제안을 한 것도 송 사장이었다. 당시 개리엇 형제가 받은 엔씨소프트 지분을 합치면 송 사장 지분을 넘어간단다.

 “실력이 있으면 대우해줘야지요.”

 이들 형제와 엔씨소프트의 미국지사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미국 개발자에 대한 막연한 열등감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게임역사도 짧고 효율적으로 스케쥴링하는 능력도 떨어지지만 우리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남들이 보기에 방황한 시절도 있어 보인다. 송 사장이 대학원 박사과정을 중퇴하거나 넥슨·엔씨소프트 등 퇴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방황은 곧 도전(‘바람의 나라’ 개발->‘리니지 ’개발->XL게임즈 설립)으로 이어졌고 적지 않은 신화를 남겼다. 송 사장이 직접 자본금을 마련해 설립한 XL게임즈는 또다른 도전이다. 송 사장은 “가끔은 왜 사서 고생하나”는 생각도 한다고 귀띔 했다. 유럽 여행 계획도 몇년 째 벼르고만 있다. 현재 개발 중인 레이싱 게임을 볼 수 없냐고 묻자 손사래부터 친다. 벌써 1년째 개발자들과 (국내 게임업계가 가장 취약한) 물리엔진만 개발하고 있어 크게 보여 줄 것 없다며 애써 과소평가하려했다.

 “벌써 몇년 전인가 봅니다. 리니지의 성공 요인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스스로에게도 여러번 묻기도 했는데 저의 답은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말 좋아하고 열심히 했다면 잘 되지 않을까요? 잘 안됐다면 정말 열심히 했는지 정말 좋아했는지 물어봐야겠죠.” 송 사장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가 한국 온라인게임사를 또 어떻게 장식할 지 올 연말 나오는 게임이 기다려진다. <류현정 기자 dreamshot@etnews.co.kr>

<송재경 약력>

86년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 수석입학

90년 KAIST입학

93년 한글과컴퓨터 입사

94년 머드게임 ‘쥬라기공원’ 제작 참여,동기생 김정주와 넥슨 공동 창업

95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 개발 시작

96년 ‘바람의 나라’ 상용화

97년 아이네트에서 ‘리니지’ 개발착수, 엔씨소프트 입사

98년 ‘리니지’ 엔씨소프트에서 상용화

00년 엔씨소프트 미국 지사 근무

02년 매킨토시용 ‘리니지’ 미국 상용화

03년 XL게임즈 설립

*<내가 본 송재경 사장>: 김상범 넥슨 이사

송재경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KAIST에 막 진학하고 나서였다. 50 여명의 동기중에서, 여학생들이 가장 부러워 한 인물이었으니,그 이유가 바로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 같은 얼굴 프로필 선을 가지고 있어서 였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까?( 이후 그가 개발하는 ‘바람의나라’ ‘리니지’ 등의 원작이 전부 순정만화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법 하다.)

9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 인터넷이 아직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을 무렵이고, 학교에서 사용하던 X윈도 환경에서도, 한글을 표시할 수 있는 터미널이 전무한 실정이었다. 누구보다도 더 많이 컴퓨터실에 상주하던 그가 이런 환경을 그냥 둘리는 만무. 처음으로 X윈도 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한텀’ 이란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고, 이후 ‘한텀’은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각 학교와 연구소에 보급되어 인터넷 시대를 앞당기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학부시절에는 워드프로세서도 만들었다며 본인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90년대 중반까지느 모뎀기반의 PC통신이 통신환경의 전부이기도 한 시절. 당시 KAIST 에는 초기 인터넷 회선이 들어와 있어서 일반 대중과의 정보 격차는 그야말로 큰 것이었다. 이때 하이텔과 인터넷 환경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도 그가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MSN 등의 각종 메신저 프로그램의 시조였던 셈이다.

이처럼 그는 획기적인 것을 잇따라 만들어냈지만 그가 처음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넥슨의 김정주사장과 엔씨소프트의 김택진사장을 만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발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해주고 만들어진 프로덕트를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내놓는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였다고 생각된다.

김정주사장과 함께 제작한 ‘바람의나라’는 미국의 ‘울티마온라인’보다 먼저 제작된 세계 최초의 그래픽 머드 게임이다. 당시 내로라 하는 개발자들도 “불가능하다” “미친짓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 였으니, 초기 개발이 쉽지 않았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직도 온라인롤플레잉게임 분야에서 ‘바람의나라’와 ‘리니지’의 동시접속 기록은 깨어지지 않다. 이후 제작자들에 사이에서 회자된 ‘송재경의 벽’라는 말도 이해되고 남음이 있다. 과연 그가 차기작으로 제작하고 있는 제품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까? 모두가 “저건 실패야”라고 했을때, 계속 성공을 한 전례가 있으니 만큼 또한 번 큰 기대를 걸어보아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