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개구리보다 거북이가 되자

세계 3대 백신 업체 가운데 하나인 트렌드마이크로의 연구개발센터 트랜드랩에선 500여명의 전문인력이 바이러스 하나 만을 연구한다.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정보 획득에서 엔진 업데이트, 바이러스 퇴치 및 재감염 방지 등 바이러스를 막는 일련의 작업을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한다.

 지난 2000년 백신 업계 최초로 ISO9002 인증을 받은 노하우가 트렌드랩 곳곳에서 발견된다. 마치 전투 지휘본부처럼 10여 개의 커다란 모니터에는 세계 각국의 바이러스 감염과 피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전문 인력들은 그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바이러스 대응 노하우 하나만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필리핀 마닐라 중심가의 트렌드랩에서 만난 스티브 창 트렌드마이크로 회장은 그래도 부족하다고 한탄이다. 창 회장은 “모든 바이러스의 위협을 하나의 업체가 혼자서 해결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갈수록 교묘해지는 바이러스를 제대로 잡으려면 네트워크 장비 업체나 네트워크 보안업체와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변방인 대만에서 유일한 글로벌 보안 기업을 만든 스티브 창 회장의 말은 국내 보안 업체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현재 국내에는 100개가 넘는 보안업체가 난립하고 있다. 저마다 기술적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실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한 선도 업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선도 업체도 출혈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다른 업체와 협력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나마 국내외 업체와 맺은 제휴 가운데는 주가 부양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도 적지 않다. 상당수의 국내 보안 업체가 어느덧 정부 정책과 시장 상황만을 탓하는 우물안 개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물 안 개구리보다는 망망대해로 향하는 새끼 거북이가 낫다. 생존 가능성은 적지만 새끼 거북이끼리 협력하다 보면 어느덧 100년을 사는 바다거북이 될 수도 있다. 국내 보안업계에게는 케케묵은 아집을 버리고 새로운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해 보인다.

  <마닐라(필리핀)=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