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IT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IT정책에 대한 민간 기업들의 시선이 차갑기만하다.정책의 기수를 자임하는 경제산업성과 총무성이 가전과 통신 등 소관 업무마다 영역 다툼을 벌이는 통에 정책의 일관성이 흐트러져 그 폐해가 온전히 기업에 돌아간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들 두 행정부의 대립은 90년대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몇 년 전 국가 업무 합리화를 목표로 단행된 대대적인 행정 체제 재편 이후에도 지속돼 기업들만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두 행정부의 대립은 올 초 전자태그(RFID) 관련 ‘2중 지침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두 부처는 각각 ‘전자태그에 관한 프라이버시 보호 가이드라인’과 ‘전자태그 이용시 프라이버시 보호 가이드 라인’이라는 지침을 내놓았다.
제목과 내용은 다른 게 거의 없고 출처가 다를 뿐이다.전자태그라는 성장 분야에서 영향력을 쥐고 싶어하는 두 부처의 이기주의가 그 배경인데,기업들은 “어느 지침을 따라야 할 지 모르겠다”며 곤혹스럽기만 하다.
이 같은 영역 다툼은 산업 구조에 맞지 않는 부처간 영역 구분이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현재 일본의 전자통신 산업의 주무 부처를 보면 총무성은 통신을, 경산성은 가전을 맡는 식으로 소관 산업이 분명하게 나눠져 있다. 그러나 IT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지금의 영역 구분은 시대에 뒤떨어져 그 의미를 크게 잃고 있다.
두 부처는 2004년도 예산에서도 전자태그와 시큐리티 등 성장 분야에서 각각의 예산을 확보해 놓고 있다.
두 부처의 대립은 지난해 대규모 바이러스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극명히 나타났다. 컴퓨터 관련 업체들은 긴급 대처 체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민간 주체의 조직을 경산성과 연계해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그러나 총무성은 즉각적으로 견제에 나섰다. 이 작업은 두 부처가 모두 참여한 가운데 지금도 계속 되고 있지만 기업들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여서 예정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행정부 간 영역 다툼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두 부처는 IT 담당자와 고위직의 인사 교류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각 부처 내에선 벌써부터 인적 교류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와 이 방안이 제대로 추진될 지는 의문스럽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이나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IT산업 진흥을 모색하고 있는 데 일본은 IT 국가전략이 안개 속”이라고 꼬집으며 “관의 영역 다툼이 민간 기업의 전략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지적한다.
<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
민간기업 전략 마련 차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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