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규모의 장비업체 한 두 곳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제 오늘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반도체 강국임에도 그 반도체를 생산하는 장비·재료 분야에서는 부끄러운 실적을 갖고 있다. 특히 제조·장비업체들의 경우 미국의 AMAT, 일본의 TEL이 수조원 매출을 내고 있지만 우리는 그 10분의 1, 100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영세하다. 최근에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세계 초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 분야 장비업계 규모 또한 초라하기 그지없다.
물론 장비는 외국에 의존한다고 해도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업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뒤집어 보면 ‘열심히 일해서 남 좋은 일 시키는 꼴’이다. 우리가 그토록 줄여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대일 무역 적자 원인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올해는 전기를 마련할 상황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강국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산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올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국내에서만도 100조원 이상의 투자가 계획돼 있다.
이 때문에 레퍼런스를 무기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세계 주요 장비업체들이 미쳐 신경쓰지 못하는 틈새 시장이 어느 때보다 넓다. 실제로 최근 대만 반도체업체를 중심으로 한국 장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틈새 시장에서 우리나라 장비업체들도 레퍼런스를 쌓으면 그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도약이 가능해진다.
올해 기반을 다지지 않으면 영원히 우리는 절름발이 강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는 정부대로, 업계는 업계대로 협력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과 장비·재료산업의 동반 성장’에 힘쓰고 있다. 소자산업과 장비산업의 동반성장. 이 흐름 속에서 우리도 세계 선두권의 장비업체들을 몇 곳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디지털산업부=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