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씨의 소설 ‘들소’를 보면 그 옛날 석기시대에도 인간 사회의 갈등구조는 문명과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한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인간의 보편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다양한 경영 기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기업 경영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삼아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타자기만 덜렁 놓여있던 30여년 전의 사무실에 비해 2003년 현재, 우리는 훨씬 더 높은 생산성을 내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 모두는 더 행복해지고 있는가.
인터넷은 정보의 무제한 소통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소비자는 공급자와 동등한 또는 그 이상의 정보를 갖는다. 이에 따라 기업체는 곧잘 과도한 경쟁에 휘둘린다. 지속적인 가격 하락 압박을 받기도 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술 혁신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기업의 생산성 개선 압박이 커질수록 노동강도도 커진다. 언제 자신이 속한 기업체가 시장에서 퇴출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공존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행복한 개인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재화의 질은 자꾸 좋아지고 값은 내려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동자로서의 개인과 소비자로서의 개인은 별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다양한 정보를 무기로 공급자를 압박하는 자도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압박에 의해 피해를 보는 사람도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이율배반적 모순이 발생한다.
회사는 이러한 정보와 의욕 과잉의 소비자를 상대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기업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과의 양방향성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고, 그래서 관계에 기초한 진정한 의미의 고객기반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환호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CTI를 통해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비용이 막대하다. 그 비용은 누구 몫인가. 회사뿐만 아니라 결국 고객도 부담하는 전 사회적인 비용일 수밖에 없다.
조직에서의 개인 정체성은 갈수록 더 헷갈린다. 메신저만 놓고 보자. 이것은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찬사와 함께 교묘한 사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회사는 이를 통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적극 권장해야 하는가.
어떤 기업은 그룹웨어로 날아오는 메일을 반드시 24시간 내에 답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기업의 매니저들이 하는 일이라곤 딱 2가지다. 메일을 읽는 일과 답변하는 일. 이렇게 되면 문화가 쇠퇴함에 따라 진정한 공감에 기반한 조직문화를 구현하기 어렵고 기계적 업무 관계에만 존재하게 된다.
회사는 메일로 자산 유출을 막겠다고 메일 감시 솔루션을 도입한다. 개인은 회사마저 빅브라더가 되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PC 관리를 위해 설치하라고 하는 TCO 솔루션을 직원들은 싫어한다. 어디까지가 개인의 프라이버시고 어디서부터 회사의 공적 관리 영역인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IT화의 숨겨진 본모습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발톱의 맛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인간의 본질은 석기시대하고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 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성만이 아닌 직관과 감성에 대한 배려가 공조할 수 있는 따뜻한 기술, 사람이 가진 본질적 특수성과 갈등 구조를 포용하는 인간적 기술만이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생산성과 행복지수의 향상을 잉태할 수 있다. 또한 인간성을 제압하지 않으면서도 나쁜 방향으로의 인간 본성을 합리적이고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 패러다임이 시급히 필요하다.
<김광태 퓨쳐시스템 사장 ktkim@futu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