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콘텐츠는 제값받아야 한다

일반 소비자들은 콘텐츠를 이용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 한다. 생활필수품이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무료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콘텐츠의 생산방식과 유통방식이 바뀌고 생산능력과 유통량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사용자들은 돈을 더 내지 않고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콘텐츠를 ‘선택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공짜로 얻은 콘텐츠를 나만 제 값내고 산다면 그것처럼 배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

 1000만이 넘는 인터넷 인구, 하루 200만부가 발간되는 무료일간지, 한달 신문 구독료보다도 못한 케이블방송 월 수신료, 어떤 전문 채널보다도 재미있고 쇼킹한 내용들로 꽉찬 지상파 방송 등. 이런 것들이 방송 콘텐츠에 대한 ‘무료 의식’을 돋궈주는 요인이다.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은 콘텐츠 생산자가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 산업 구조를 양산하게 된다.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새로운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할 수 없고, 그런 콘텐츠는 고품질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어 결국 콘텐츠 산업은 위축되는 것이다. 업계는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결코 이익일 수 없는 것이다.

 방송위원회가 발간한 ‘2003년 TV 시청행태연구’ 자료집에 의하면, 일반 시청자들은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의 수신료에 대해 62%가 비싼 편이라고 답한 반면, 케이블TV의 수신료는 대부분이 ‘적당하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케이블TV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12월말 케이블TV 전체 1140만 가입가구 중 월 4000원 미만의 시청료를 내는 가구가 전체의 32%, 월 4000원 이상 8000원 미만의 가구가 52%로 케이블 가입가구 대다수인 84%가 8000원 미만의 시청료를 내는 반면 월 8000원 이상은 전체의 16%인 180만 가구에 불과하다.이 수치는 스카이라이프 전체 가입 가구수와 비슷하다. 그나마 ‘적당한 가격’이라던 케이블방송을 이제는 케이블의 초고속인터넷에 가입하면 공짜로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시청자가 케이블TV 수신료는 적당하고 위성방송은 비싸다고 여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케이블TV와 위성방송간의 단순비교를 넘어 70여개 채널의 케이블방송을 한달동안 시청하는 가격이 극장 영화 한편 값보다 못하고 160여개 채널의 위성방송 수신료가 이동통신 월 사용료보다 낮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95년 케이블TV 개국이래 한국의 대표적인 교양 및 다큐 채널로 확고한 위상을 굳힌 1세대 PP인 한 다큐 채널이 1차 송출 중단 위기를 넘기고 아직도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런 일은 비단 이 채널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소수의 MPP(복수PP)를 제외한 대부분의 PP들은 ‘케이블SO의 저가형 채널 티어링→SO의 수신료 체계 왜곡→PP의 경영약화→ PP의 자체 제작 기피→값싼 외국 프로그램 수입 방송→PP의 프로그램 경쟁력 약화’라는 악순환 구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살아야하기에 PP들은 절대 부족한 수신료 수입을 메우기 위해 수준에 미달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홈쇼핑 광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스카이라이프가 케이블TV보다 비싼 시청료를 받는 만큼 총 수신료 중 프로그램 사용료로 베이직 채널에 35%, 프리미엄 채널에 평균 6%를 배분하고 있다. 실제 지난 한 해 스카이라이프는 PP의 프로그램 사용료로 400억원 이상을 지불했다. 즉, 악순환 구조의 유료방송 콘텐츠 시장에 선순환의 새로운 피를 제공하기 시작한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1월, 대표적인 MSO인 CJ케이블넷이 PP수신료를 유료화하겠다는 선언은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성방송과 케이블TV, 뉴미디어의 성공은 바로 콘텐츠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가격의 정상화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왜곡된 유료방송 산업의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저가 중심의 상품판매를 지양하고 PP수신료 배분체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또한 정책 당국도 콘텐츠 활성화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정책 지원을 해야할 것이다.

 수신료 정상화와 콘텐츠 투자확대를 통해 국내 콘텐츠 공급 기반을 강화하여 뉴미디어 시장의 파이를 키워 나가고, 시청자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콘텐츠는 공짜가 아니며 제값을 지불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위성방송과 케이블TV가 손잡고 해야 할 첫번째 과제일 것이다.

◆유희락 스카이라이프 정책협력실장 yu21@skylif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