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시대에도 지금처럼 납중독 문제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납은 기원전 4200년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데,채광·정련·성형이 용이하고 융점(녹는 온도)이 다른 금속보다 낮아 빨리 보급됐다. 특히 은생산 과정에서 납이 부산물로 나와 납 사용량이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상수도관·그릇·화장품·화폐·도료·지붕 재료·책상·관·땜납 등 생활 전반에 폭넓게 사용됐다.
로마의 납생산량은 가공할만한 수준인데 라우레이온 광산 등 주요 광산을 중심으로 은 1온스당 평균 3000온스의 납이 생산됐으며 대략 3세기 동안 210만톤의 납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이는 현재 전세계 연간 납생산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로마 시민의 납중독을 시사하는 예는 아주 많다.수 많은 로마 시민들은 변비,흑변,복통,빈혈,관절통 등 만성 납중독 증세에 시달렸다. 상류층이라고 해서 납중독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는 로마 상류 계층의 인골 분석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상류층 부녀자들은 납이 함유된 화장품을 애용했으며 납이 함유된 포도 시럽을 감미료로 썼다. 심지어 로마 귀족들이 먹던 포도주에도 납은 들어갔다. 결국 로마 시민의 납중독은 출산율 저하 등 생식 능력의 전반적인 쇠퇴를 초래했다.
시계추를 현재로 돌려보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각종 전자 제품에도 다량의 납이 함유되어 있다. 반도체 칩·PCB 등이 대표적이다. PCB의 경우 각종 재료를 삽입 실장(IMT)하거나 표면실장(SMT)하는 과정에서 납을 필수적으로 사용한다. 최근 환경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납을 대체할만한 환경친화적 물질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하지만 대체 금속들의 경우 납보다 융점이 높아 반도체 칩의 신뢰성과 작업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현재 세계 각국이 납중독의 폐혜를 이유로 규제에 나서고 있다. 유럽 연합(EU)은 2006년부터 납이 함유된 전자제품의 제조및 유통을 제한키로 했다. 이에 발맞춰 인텔·AMD 등 반도체 업체들이 하반기중 무연 반도체 및 칩셋을 내놓기로 했으며 소니·NEC 등 일본 업체들도 납 등 중금속 사용을 제한키로 했다. 이제 우리 업체들도 납사용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장길수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