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산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IT부문이 GDP증가에 미치는 기여도는 무려 35%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 정보화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인구 1000명당 인터넷이용자 비율도 세계 2위로 나타났다.
굳이 이런 통계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국내 IT 인프라는 이번 17대 총선 과정에서 그 위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통해 후보자와 유권자가 실시간 대화를 나누고, 유명 채팅사이트에는 지지 후보의 이름으로 대화방을 만들기도 했다. 인터넷 메신저 대화명이나 프로필 사진을 이용하는 선거운동은 기본이고, 휴대폰 컬러링과 레터링까지 알뜰하게 이용했다. 각 후보들의 디지털 선거전도 초고속으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4·15총선에서 최신기술로 무장하고 사이버 공간 곳곳에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했던 ‘디지털 선거전’을 지켜보며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런 좋은 인프라를 왜 그동안 적극 이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의 IT활용도나 전반적인 인식은 IT강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현행법이 IT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유야무야된 인터넷 실명제 파동도 인터넷이라는 특성과 변화하는 정치 참여 통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탄핵여파로 위성멀티미디어방송법안 처리가 더 연기됐다면 무려 1조원의 피해가 예상되기도 했었다. 앞으로 줄줄이 쏟아져 나올 다양한 이슈들이 당리당략에 좌우되거나 충분한 의견 수렴과정 없이 입법된다면 그 혼란은 결국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각 정당에서 앞다퉈 발표한 IT관련 공약도 살펴볼 문제다.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많은 IT 전문가들이 출마했다는 이번 17대 총선에서조차 전문가다운 참신한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오는 2007년까지 세계 최고의 IT 산업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구호성 공약이 나오는가 하면, 네티즌 대표가 참여하는 디지털정당추진위를 구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최근의 취업난을 고려한 듯 이공계 지원정책도 슬그머니 끼워넣었다.
국내에서는 현재 수많은 사이버 커뮤니티와 인터넷 메신저 등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이 많다. 유권자들과 보다 적극적인 의사교환이 가능한 환경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총선에 나선 상당수 의원들은 개인 홈페이지조차 없거나, 그나마 상당수는 총선에 맞춰 급조한 흔적이 역력했다. 누가봐도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보화 시대 역군을 자임했던 지난 16대 국회의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16대 총선 직후 의정활동·병역과 재산 등 신상정보·정치자금 정보·커뮤니티형성 등으로 평가한 국회의원 홈페이지 활용점수는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평균 27점에 불과했다고 한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의욕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사이버 포럼의 자유게시판을 가보면 현재 총 게시물이 고작 6개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작년 국감 결과 IT를 대표하는 정보위의 활동이 가장 적었다고 한다.
결과야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17대 국회 당선자 만큼은 선심성 공약이 아닌 변화하는 디지털 트렌드를 주도해나갈 수 있는 인물들이 중심이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지혜와 식견을 가져여 할 것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17대 국회 구성원들의 윤곽이 다 드러날 것이다. IT 강국에 걸맞은 전자민주주의의 실현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국정활동도 중요하고, 지역구의 의견수렴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트랜드에 걸맞는 정치문화와 정책입안 능력도 분명 국회가 갖춰야할 자질이다. 네티즌의 새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떠오른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국회의원이라고 못만들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적극 경험해야 한다. 그렇게 느끼고 소통해야 한다.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의 시각이 필요한 때다.
4·15 총선은 바로 이런 시각을 가진 국회의원들을 선택하는 날이다. ‘한 표’의 소중함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게 하는 날이다.
<태정호 유디에스 사장 jerroldta@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