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뛰고 있다. 거인 중국과 인도가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다시 일본이 재도약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만든 긴 덫에 묶여 있었다. 세계가 발 빠르게 뛰는 동안 우리가 겪은 물류대란과 정신적 파국으로 몰고 간 노사문제, 교육문제, 가계부실화와 탄핵공방이 남긴 상처는 깊다. 그래서 17대 국회를 기점으로 정치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장마가 길어지면 햇볕에 대한 기다림은 더욱 절실하기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학기술은 국가에 무엇을 해 줄 수 있고 국가는 과학기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과학기술은 그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민이 과학기술에 대해 갖는 인식이 ‘과학기술=2만달러 달성의 수단’ ‘과학기술=신성장산업의 동력’과 같은 등식으로만 대변돼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은 지식의 영역을 확장해 사람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식이다. 과학기술에는 억지나 거짓이 발붙일 수 없다.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선물인 합리주의는 바로 그 사회의 삶과 생각의 근간이 된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과학기술이 제대로 서고 국가와 사람들의 삶에 제대로 공헌하려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국회가 무너지면 희망이 없다. 법을 만들고 적용하는 일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무리가 없어야 한다.
국회의 역할은 정부와 사회의 마음이 선한 합리주의에 올바로 서게 되도록 법과 사회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일을 벌여 놓고 간섭하는 것보다 일이 시작되기 전에 큰 그림과 원칙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기술자와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도 하고 돈도 썼는 데도 경제나 스포츠에 비해 과학기술의 연구와 교육 수준이 아직 낮은 것은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첫째, 진실과 진리를 향해 성실하게 나아가는 자세의 결핍이고 둘째, 문제는 일하는 인프라도 만들지 않고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자세다.
과학기술에 거는 기대는 거의 절대적이다. 실제로 정부는 과학기술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려는 의지를 보여 왔다. 그러나 결과는 이공계에 대한 극심한 기피 현상으로 나타났다. 연구비 총액이 모자라서 연구가 잘 안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연구비를 쓰는 능력도 실력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선진 연구를 하려면 돈 외에도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차라리 이공계이건 인문계이건 간에 학문, 즉 힘들지만 옳은 길을 걷는 것에 대한 기피다.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며, 합리적인 방법으로 추구하는 것이며, 삶에 진정한 유익을 주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학문의 정신은 사회의 정신이므로 정신 자세가 확고하고 명석한 젊은이들이 학문을 사랑해야만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다. 국가에서 제시하는 장학금 제공, 병역 의무기간 단축 등은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이공계 기피문제를 해결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려면 ‘인력 양성’과 ‘연구’의 두 가지 면에서 정부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대학이 스스로 획기적인 교육 개혁을 도모하도록 큰 울타리로 이끌어야 한다. 정부의 교육 진흥사업이 돈을 쓰는 방식에 대해 지나치게 세부적인 규정으로 간섭하는 것은 쓰이는 효율을 크게 저하시킨다.
문제는 탁월한 학생이 평생 일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장이 우리나라에 별로 없다는 것이다. ‘최고’를 최고로 대우하는 국가 연구소가 중요한 분야마다 있어야 한다. 이는 대학생에게 졸업 후에 희망을 주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공무원의 이공계 정원을 늘리고 장학금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17대 국회에서는 말로만 과학기술 강국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법제화에 앞장서 이공계 기피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해본다.
<경종민 KAIST 교수 kyung@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