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작은 정부

노자는 도덕경 ‘제17장 태상(太上)’에서 훌륭한 정부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임금은 백성들이 그가 있음을 알 뿐이고, 다음가는 임금은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며, 다음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 다음으로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그러므로 신의가 부족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정부 또는 위정자는 무위와 자연의 도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노자는 주장했다. 무위와 자연의 도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현대 정치철학은 정부의 크기를 최대한 작게 하는 ‘작은 정부’로 해석하고 있다. 작은 정부가 지향하는 정치철학은 자유지상주의이다.

15일 총선이 치러졌다. 지난 한 달을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국회 가결이 있었고 각 당의 지지율은 수시로 바뀌었다. 이 기간 중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일을 진척시키지 못했다. 결정 사항들은 ‘총선 이후’로 밀려났다. ‘공무’가 ‘정치’에 밀리는 공백기간이었다.

문화관광부의 경우 3월 8일 예정돼 있던 대통령 업무보고는 밀리고 밀려 지난 12일 고건 대통령 대행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 분기가 훨씬 지난 후에 한해 업무보고를 하게 된 것이다. 정부 직제개편도 총선 이후 언제 이루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 사이 고통을 맡게 되는 대표적인 부류는 기업인들이다. 산적해 있는 정책과 지원이 풀려야 맘 놓고 움직일 수 있는 기업 여건상 국정공백은 큰 마이너스다.

‘문민정부’ 이후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에 이르기까지 각 정권은 ‘작은 정부’를 내세웠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정부를 꿈꿔 왔지만 부처 간 밥그릇 싸움, 아전인수 식의 논리로 ‘작은 정부’는 언제나 말 뿐이었다. 이번에도 정치권이 나서 경제 혼란까지 야기시켰다. 정치가 주도하는 큰 정부를 만든 것이다.

총선이 끝난 후 모든 국정이 일사천리로 해결되길 바라는 것은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정치가 우선이 아닌 경제와 산업, 기업이 우선되는 작은 정부의 바람은 선거가 있을때 마다의 염원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소리없는 지원과 독려가 필요한 시점인 것을 정치권이 바로 알아야 할 때다.

<디지털문화부=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