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 단말기 및 장비 업계가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린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과는 달리 중견·중소 휴대폰업계와 전문 통신장비 업계는 수요 감소와 누적된 자금압박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업계는 올해 하반기 이후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몇몇 업체가 도산의 위기로 내몰리게 되며, IT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벌써 우려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감도는 위기감의 실체를 점검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 본다.
<글 싣는 순서>
제1회. 수익 못 내면 망한다
제2회. 과당 경쟁이 다 죽인다
제3회. M&A도 한 방법이다
제4회. 상생의 길 모색하자
“황금어장으로 불리던 중국 휴대폰 시장이 덤핑과 외국업체에 대한 규제로 얼룩져 더 이상 해외시장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중견 휴대폰 관계자)
“재고 장비 물량이 쌓이면서 당장 현금화할 능력도 소진됐고, 이렇다할 뚜렷한 새 수요처도 없습니다.” (중견 통신장비 업체 관계자)
통신 시스템 업계가 수익성과의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최대 IT 품목으로 부상한 휴대폰은 물론 벤처붐을 타고 급부상한 통신시스템 업계가 최근 생존을 위한 투쟁중이다. 현재 20%대의 수익을 내는 삼성전자를 제외하곤 확실하게 생존카드를 쥔 곳은 없다. 중견·중소업체들은 적자 경영에 허덕인다. 지난해 텔슨전자·맥슨텔레콤 등 대부분 중견·중소업체들이 적자를 기록했다. LG전자와 팬택계열도 이익률이 5% 안팎이다.
상당수 휴대폰업체들은 적자 경영 탈피를 위해 구조조정에 나섰다. 최고경영자(CEO)를 바꾸고 조직도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올해 확실하게 흑자를 낼 수 있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몇몇 업체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이고 일부 업체는 적자 경영으로 계열사를 매각해야 할 형편이다.
국내 휴대폰업체들이 CDMA 휴대폰 부문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 규모도 5억대를 넘어설 정도로 성장세를 보였지만 시장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 노키아·모토로라·지멘스 등 세계적인 업체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데도 브랜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2개 내지 3개 휴대폰업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고사할 것”이라는 말까지 내놓고 있다.
네트워크장비로 대변되는 통신장비 업계도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다. 다산네트웍스·코어세스·우전시스텍·한아시스템·쌍용정보통신 등 대부분의 통신업계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인다. 매출 1000억원 시대 운운하던 것이 2년도 채 안됐다. 미리넷 정도가 선전하는 상황이다. 상황은 더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프라 구축이 어느 정도 완료된 지금 뚜렷한 수요처가 없기 때문이다.
토종 통신장비 대표주자인 다산네트웍스는 지난해 적자로 돌아선데 이어 최근 독일의 지멘스사에 대주주 지분을 넘겼다. 벤처 1세대 이후 대표주자로 촉망받던 코어세스마저도 빌딩을 매각하는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기가링크는 아예 업종전환을 선언했다. 텔슨정보통신·우전시스텍 등도 수익률 달성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인터넷 인프라 구축 수준이 세계적으로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장비업계는 내상이 너무 깊다. 일부 업체는 올해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괴담‘에 시달린다. 일부 업체는 출혈경쟁까지 나섰으나 되레 자금압박이란 역풍을 맞았다. 게다가 화웨이 등 중국업체들도 국내 시장에 진출 속속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다국적 기업 또한 본사의 다양한 인적·물적 지원을 바탕으로 파상공세를 벌이고 있다.
그동안 몸집 부풀리기에 심혈을 쏟아온 통신장비 업계가 이제는 생존을 건 수익성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몸집을 줄이고 건물을 매각하는 것 이외에도 공장까지 팔고 아웃소싱으로 돌릴 정도다. 안이한 대응은 더 빠른 몰락을 재촉할 뿐이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