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WIPI)’의 단일표준 채택 여부가 한·미간 통상현안이 되고 있는 가운데 양국이 이번주 중 미국에서 만나 의견을 조율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는 5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제2분기 한·미 통상회의에 앞서 열리는 만큼 양국간 구체적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보여 어느 정도 의견 접근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이 지난 2월 열린 한·미 통상회담에서 위피 표준 문제를 집중 부각한데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통신 기술 표준에서 ‘주요 우려 대상국’으로 분류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문제는 가능한 이른 시일 내 해결해야 할 사안임에 틀림없다. IT시장의 경우 기술표준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표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자칫 통상 마찰의 핵심으로 비화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원만한 해결이라는 전제에 매달려 무조건적인 양보는 곤란하다고 본다. 우리의 입장을 정확히 밝히고 이해를 구할 것은 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번 의견 조율에서 이동통신사업자들간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플랫폼으로 위피를 정하고 여기에 다른 플랫폼 기반 콘텐츠도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기본 방침을 설명하고 미국 측의 입장을 듣겠다는 복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위피 표준채택 여부를 오는 6월로 연기해 미국 측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기간을 줬고 양국 표준 공존 방안도 거론된 점을 감안하면 의견 접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급한 기대를 갖는 것은 통상협상에서 금물이다. 어떤 문제가 돌출될 지 모르는 만큼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대안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위피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동안 우리 측이 콘텐츠 호환성 증가와 동시 사용 효율화 등 화해를 수없이 모색했지만 미국 측은 암암리에 자국 기업의 표준 채택을 강요하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미국이 위피 문제를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기 개발 때부터 개발사 참여, 지적재산권 문제 등 갖가지 사안을 제기하며 압력을 넣었었다. 이제는 시장에 맞겨야할 표준 문제에까지 압력을 넣고 있다. 시장개방에 초점을 맞췄던 미국이 이처럼 기술표준에까지 압력을 넣는 이유는 표준으로 인정받지 않고서는 한국시장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IT 분야에서 기술 표준은 기업은 물론 산업 전체의 명암을 가를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 무선인터넷 표준화에 감시의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자칫 안방을 내줘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 미국 측이 우리가 의도적으로 외국 경쟁기업을 배제하기 위해 위피 개발을 주도했다고 의심하는 문제에 대해 그것이 무리한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무선 인터넷 접속과정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이동통신사마다 달라 호환이 안될 경우 중복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명확히 설명해야한다. 규격제정에도 미국업체들이 참여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갈수록 IT분야 통상현안이 늘어날 조짐이다. 그만큼 보다 분명한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가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한·미 양국간 마찰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시비가 잇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