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했다.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변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의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현란하게 변하리라는 예측이다. 약육강식이라는 상대적 생존경쟁은 고전이 되었고, 존재와 소멸이라는 절대적 생존투쟁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 ‘이태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계경제는 마이너스 수치를 지속하고 있다. 답답해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서도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점에 누구나 동의하며 위안을 삼는다. 정부에서 선정한 차세대 성장 동력의 태반도 이 분야와 관련되어 있다. 전통적 제조업이 탈한국 현상을 보이고 있는 이면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IT산업과 관련하여 국내에 진출하고 있는 사실도 국제경제의 주목거리다.
IT산업은 표준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앞에서 언급한 대로 표준투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국력을 배경으로, 아니면 회사 규모나 첨단 기술력을 내세우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통 분야의 변화도 전문가 그룹의 예상을 뛰어 넘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전자거래진흥원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 전자거래 규모가 238조원이라고 한다. 국내 총 거래규모(1426조원)의 16%가 넘는 규모다. 당연히 전자거래 분야의 표준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 전자문서, 전자지불, 전자카탈로그와 관련된 각국의 표준들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며 발표되고 세력화하고 있다.
전자거래의 핵심 코어는 전자카탈로그다. 상품정보와 거래정보가 전자적으로 결합된 전자카탈로그는 구매자와 공급자 사이를 쉽고 편하게 연결해 주는 방법론이다. 쉽고 편함을 실현하기 위해 표준화는 필수적이다.
조달청은 1962년 정부 보유 물품의 총괄관리를 담당하게 되면서 40년 이상 상품분류와 식별 표준화, 상품정보 축적이 주요 업무인 목록(Catalog)제도를 운영해 왔으며,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의 운영을 계기로 전자상거래의 국제표준으로 통용되는 UN 표준상품서비스 분류체계(UNSPSC)를 도입해 G2B분류체계를 구축했다. G2B분류체계는 국제 관세분야의 HS, 유럽지역의 eCL@ss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상품분류체계다. 그 동안 15만여건 23조원의 실제 거래를 통해 보편성과 적합성을 검증하고 국내 상품분류체계를 선도하고 있다.
민간표준화기구인 전자상거래표준화통합포럼의 표준화 활동과 한국전자거래협회가 주관하는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B2B 시범사업에도 참여하여 민간분야에 대한 기술지원과 협력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자문서의 국제표준화기구(UN/CEFECT) 회의에서 발표한 조달청의 표준화 성과는 프랑스, 일본을 위시한 선진국 스페셜리스트의 성원과 견제를 동시에 받으며 회의 분위기를 긴장시켰다. 앞으로 한·중·일을 연결하는 동북아 전자시장(eMP) 밸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이 난관이 없을 수 없다. 전자카탈로그는 투자비용의 부담 없이 우수한 인력만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전자거래 분야에서 국제적 헤게머니를 쥘 수 있는 기술이기는 하나 당장의 수익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경제 침체로 경영이 어려워진 민간기업이 관심을 갖기가 힘들다. 정부가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민간분야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아무리 잘 설계된 분류체계라 할지라도 사용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면 버려진다. 각종 국제표준이 현지화와 세 규합에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국가표준상품분류체계 구축이라는 현지화 작업을 밀도 있게 진행시켜 전 산업분야에 확산시키고,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과 행정력 양성에 정부의 정책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조달청은 전자카탈로그의 정책수립을 위한 전문인력, 기술, 경험과 효과적 실현에 필요한 행정력, 구매력, 시장 등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관계기관들과의 원할한 협조로 전자카칼로그 표준화를 통하여 국가경쟁력 강화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염재현 조달청 물자정보국장 yumjh@pp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