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언어통일로 북한IT산업 돕자

언어에는 사람을 결합하고 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가 같은 말을 쓰고 있다면 그 말 때문에 쉽게 뭉쳐질 수가 있다. 언어의 친교적인 기능은 사람을 결집시키고 단결하게 만든다. 타향에서 고향 사람의 친근한 사투리를 들으면 반갑고 외국에서 자기 나라말을 들었을 때 반가운 것도 바로 언어의 친교적인 힘 때문이다.

 주시경 선생은 <어록>에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고 하였다. 프랑스의 부모들은 딸을 시집 보낼 때 “내 딸에게 프랑스 말만은 잘 가르쳤다”고 자랑한다고 한다. 프랑스 말을 바르게 하는 것은 바른 프랑스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올바른 생각을 지닌 프랑스 사람으로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한의 국어의 통일은 이런 의미에서 조국통일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남북한이 지금 쓰고 있는 한글맞춤법은 1933년 10월 29일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바탕이 되었다. 이 ‘한글맞춤법통일안’이 1945년까지 남북한에서 공통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20여년동안 그대로 쓰였는데, 이것이 남북한 맞춤법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지금 남북은 서로 다른 정치 문화의 영향으로 다른 언어정책이 시행되었고, 맞춤법을 비롯한 문법체계의 이질화가 나타났다. 이런 현상을 방치할 경우 남북한의 정보통신언어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고 이들을 한글 용어로 표준화하는 작업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네티즌이 3500만명을 넘었고 각종 정보기술(IT)의 발달에 힘입어 디지털시대의 선진대열에 서 있다. 한국 정보기술이 발전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한글의 우수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은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로서 컴퓨터 구조에 잘 어울리는 글자이다. 가령 ‘손전화’의 자판은 12개의 타건으로 되어 있는데 4만자나 되는 중국 한자나 100글자가 넘는 일본 문자로는 불편해 정보화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한글은 현대 정보사회의 컴퓨터의 조합형 원리와 완전히 일치한다. 한글은 24자를 조합하여 1만2000여개의 음절을 생성할 수 있어서 여러 소리를 거의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다. 미국의 제어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런 한글의 우수성을 근거로 남북한이 세계에서 문맹자가 가장 적다고 극찬하는 장문의 논문을 권위있는 과학잡지 ‘디스커버(Discover)’에 실은 바 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 지식 기반의 정보사회에 살고 있으며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민족적 과제를 가지고 있다. 남북한의 IT 공유와 교류는 민족의 통일과 발전에 필수적인 것이다. 통일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 정보화의 균형적 발전이다. 이것이 통일의 기반이 되고 통일조국의 정보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한의 정보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데 비해 북한은 상당히 뒤진 상태고 컴퓨터 보급률도 낮아 인터넷 접속이 거의 안되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만일 이런 상태로 통일이 되면 정보통신기술의 차이점도 문제지만 남북한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언어의 이질적 요소 때문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정보통신 용어는 남한과 북한에서는 물론 한국 내에서도 차이점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chip’이 ‘직접회로’ ‘칩’ ‘소자’ 등으로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북한이 통일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국어의 통일이고 정보통신어의 통일이며 표준화다. 남북한의 국어의 통일 없이는 통일조국의 정보사회는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조국이 통일된 후에 북한지역이 정보기술에서 낙후되어 있으면 그것은 또 하나의 분단인 것이다.

 <최기호 상명대 교수·한국어정보학회장 chkh@sang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