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장비업계, 생존 해법을 찾아라](2)과당경쟁이 다 죽인다

차이나드림은 커녕 상당수 `쪽박신세`

국내 휴대폰업계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만 의존하다 혼쭐이 났다. 중국의 CDMA 휴대폰 시장이 열리면서 너도나도 앞다퉈 시장에 진출한 게 화근이었다. 세계적인 휴대폰업체들과 중국의 로컬 업체들이 공급량을 늘림에 따라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진데다 사스 등으로 중국 휴대폰 수요마저 감소하면서 낭패를 봤다.

 국내 대표적인 통신장비 부문의 xDSL 업체들의 중국 진출도 마찬가지다. 알카텔 같은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의 진출 전략은 차치하고라도 국내 업체간 가격경쟁으로 어려움만 가중됐다. 오히려 기업의 자금여력만 소진하는 꼴이 됐다.

 물량을 늘리는데 혈안이 돼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팔고 보자는 식이다. 당연히 국내 업체간 서바이벌 경쟁으로 옮아갔다. 대기업은 자금과 물량을 동원해 중소기업 죽이기에 나선 상황이고, 중견·중소기업들간에는 하나의 공급처를 놓고 출혈경쟁으로 날을 지새기 일쑤다. 결국 차이나 드림을 꿈꾸었던 상당수 업체들은 ‘대박’은 커녕 ‘쪽박’만 차게 됐다.

 모 휴대폰 중견업체 사장은 “브랜드와 퀄러티로 승부해야 할 대기업마저 가격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중견·중소업체들의 설 자리가 없어졌다”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 로컬업체들마저 약진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중국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장비 업체의 한 사장도 “중국시장은 규모가 큰 만큼 만만찮은 곳”이라며 “오히려 국내업체와 경쟁을 하다보니 로컬업체, 다국적업체와의 경쟁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토로했다.

 휴대폰 수출로 먹고 사는 국내 업체는 줄잡아 50∼70여 곳. 무선호출기나 통신장비 사업을 하던 기업들이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휴대폰 모듈 업체에 의존하면 바로 휴대폰을 제조할 수 있게 됐다. 중국 시장 개방으로 바이어들도 밀려왔다. 하지만 업체간 과당 경쟁이 벌어지면서 호황은 커녕 본전도 찾지 못하게 됐다. 지난해 80∼90% 업체가 적자를 냈다.

 통신장비 부문도 마찬가지다. xDSL 부문이 대표적이다. 지난 98년부터 형성된 통신사업자들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구축 붐을 타고 다산네트웍스·코어세스·미리넷·텔슨정보통신·우진네트웍 등 10여개사가 넘는 업체가 급부상했다. 개발 전문업체까지 포함하면 50∼60여개사에 달한다. 하지만 초기 ADSL 구축 붐과는 달리 인프라 구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업체간 과당 및 출형 경쟁은 기본이 됐다. 게다가 최저가 입찰 방식을 앞세운 통신사업자들의 횡포에 국내 장비업체들의 설 땅이 없다. 불법 납품 관행을 개선하고 최저가보장제를 실시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공급업체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중국업체들마저 밀려들고 있다. 휴대폰 부문도 조만간 중국업체의 진출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업체들간 과당경쟁에 중국 업체들이 참여해 저가경쟁을 부추기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자금력 있는 삼성전자·LG전자를 빼고 나면 통신장비·휴대폰 업체중 수익은 고사하고 내일을 기약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통신장비·휴대폰업계 내부에서부터 구조조정을 서두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통신장비의 경우 중국은 물론 일본·동남아서도 국내 업체간 과당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상당수 휴대폰 업체들이 CDMA에서 GSM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과당 경쟁의 도를 넘어섰다. 동남아와 미국은 물론 새로 시작하는 유럽으로도 국내 휴대폰 업체간 과당경쟁이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이대로 가다간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통신장비 부문의 모 기업 사장은 “토종 국내 통신장비중 상당수는 올해 혹은 내년 초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며 “생사 문제가 코앞인데 업계의 자정노력 운운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정부와 통신사업자의 노력이 우선시돼야 함을 주장했다. 휴대폰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