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전을 통해 도래한 디지털 사회에서는 기존의 아날로그 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정보가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아날로그 시대의 영화나 음반, 소프트웨어는 생산 및 유통과정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 왔고 그 결과 서로 변환하거나 융합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유통 역시 공간과 시간이라는 제한적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화의 급속한 진행은 이러한 지적 창작물의 복제 및 유통의 제약을 일시에 제거해 버렸다. 디지털 정보는 질적인 손상 없이 무한 복제가 가능하며 복제된 저작물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무제한 유통된다. 이 ‘무한 복제’와 ‘무한 유통’은 ‘정보=상품’으로 대변되는 오늘날 정보 산업화의 걸림돌이다.
정보 산업 경쟁력을 보유한 선진국들은 이미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를 통해 디지털 기술을 법 테두리 안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저작권법을 통과시켜 적용하고 있다. 반면 아직도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기술 및 시장 추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아날로그 시대의 저작권법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강력한 IT 인프라를 가진 나라일수록 그에 걸맞은 법적 장치가 없으면 인터넷을 이용한 저작권 침해 행위는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필자도 몇 차례 한국 방문을 통해 엄청난 인터넷 발전상을 직접 느끼고 감탄했다. 한국의 IT 인프라 구축 수준은 이미 세계적 선두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적재산권 보호는 IT 인프라 구축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해 초 국제지적재산권연맹(IIPA)은 한국의 저작권법이 인터넷 방송 등 음악의 온라인 전파에서 음반 제작자에 대한 배타적 송신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온라인 음악 전송에 관한 현재 한국의 조처는 미국 등 선진 업체들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의 온라인 음악 산업은 글로벌 경쟁력 면에서 큰 장애가 될 것이 극명하다.
단적인 예로 온라인 음악의 송신권 문제를 들었지만 세계 경제 추세로 볼 때 앞으로 국내외 기업들 사이에서 온라인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분쟁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른 저작물의 생산과 유통방식의 변화가 가져오는 지적재산권의 문제들,즉 온라인 전송, 위성방송, 양방향 케이블 방송 등의 새로운 유통 구조로 인해 앞으로 더욱 복잡한 저작권 분쟁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로 인한 국가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조항이나 세계지적재산권기구의 저작권 조약 등 국제조약의 내용에 많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선 세계지적재산권 법령의 문제점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앞으로 국제적 관계 속에서의 지적재산권 장벽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각국 나름의 고민들이 선행돼야 한다.
지적재산권은 이미 국가 간 강력한 경쟁 무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재의 지적재산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거나 인터넷의 상징적 의미인 공유권의 논리를 들어 디지털 지적재산권 보호를 소홀히 하면 한국은 화려한 IT 인프라 속에서도 문화적 발전에 많은 장애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국제적인 지적재산권 경쟁시대를 맞아 한국 또한 현재의 지적재산권 보호 정책에 대해 다시 한번 평가하고 세계적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로버트 홀리먼(Robert W. Holleyman) BSA 의장 roberth@b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