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식 이동방송수신규격이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더구나 이 보고서는 그동안 방송과 언론단체의 입장에 서서 유럽식 전송방식을 주장하던 KBS가 내놓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만약 KBS가 이같은 입장으로 선회하면 기존 방송 단체들의 입장 변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동안 지루하게 힘겨루기 하며 갈등을 빚었던 디지털TV(DTV) 전송방식 논란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다.
KBS의 보고서에 따르면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규격화 및 장비개발 기간이 최소한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유럽의 휴대이동방송수신기술규격(DVB―H)을 도입할 경우 지상파 DMB서비스의 경쟁을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 이유는 DVB―H가 방송보다는 통신 개념이 강할 뿐만 아니라 유럽의 전송방식인 DVB―T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기술이어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SW를 기반으로 한 DVB―H의 시스템은 프로그램 오류와 바이러스 감염 등의 우려가 있어 방송시스템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잠재적으로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번 조사의 자문에 응한 핀란드의 노키아 기술연구소마저도 고정수신은 미국식으로 휴대이동수신은 유럽식으로 절충해 가닥을 잡은 우리 정부의 방향에 대해 효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키아는 필립스·모토로라·소니 등 17개 통신 및 수신기 제조업체와 공동으로 ‘인터넷프로토콜데이터캐스팅(IPDC)’포럼을 결성해 DVM―H를 개발 중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쟁업체다. 우리가 유럽기술을 채택할 경우 엄청난 지적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키아의 이같은 충고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점이다.
기술의 흐름을 읽는 우리들의 안목에 문제가 없는지 이번 기회에 냉철히 되짚어 볼 일이다. 그 동안 우리는 차세대 성장 동력인 DTV사업을 놓고 불필요한 소모전만 되풀이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DTV 관련 기술을 개발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임에도 힘을 앞세운 이해단체들의 논리와 또 그것을 정치적으로 풀려고 했던 정부의 자세로 인해 산업계가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DTV필드테스트추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정통부는 DTV 전송방식 조기 결론에만 매달려 이 문제를 효율적으로 통합 조정하지 못했다. DVB-H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면서도 이를 검토한게 그렇다. 특히 KBS보고서도 모르고 실무진을 유럽에 파견 한다고 한다. 방송위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디지털 방송사업은 관련 단체들의 이해관계의 득실이나 정치적 해법으로 풀어갈 사안이 아니다. 이번 KBS 보고서의 객관성 유무에 대해서는 추후 ‘DTV필드테스트추진위원회’가 검증하겠지만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또다시 갑론을박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보고서는 보다 냉철하게 우리의 산업적 이익은 물론, 방송환경까지 감안할 때 어떤 방식으로 대안을 찾아야 하는가 하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