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장인을 찾아서](16)(김숙희 솔리데오시스템즈 사장

‘행정정보화의 달인’

주요 정부부처나 지자체 전산직 공무원치고 이 사람을 모르면 간첩(?)이다. 안면은 없을지언정 이름은 안다. 행정정보화 분야의 살아있는 신화, 솔리데오시스템즈 김숙희 사장(48)이다.

늦은 오후,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김사장은 작고 여린 체구에 목소리마저 나지막했다. 수녀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대뜸 쑥스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우리나라 행정정보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피땀을 흘렸는데 저 혼자 주목받는 건 가당치도 않아요.”

김 사장은 전산직 공무원 출신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74년 이래 서울시청에서 17년, 은평구청 전산개발팀장으로 5년, 창업 후 7년 등 도합 30여년의 세월을 줄곧 행정정보화 분야에 바쳤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손을 거친 정보화 프로젝트들 대부분이 현재 주요 정부부처와 지자체에서 표준 행정정보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작이 그가 은평구청 재직시 개발한 ‘은평구청 민원종합행정정보시스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행정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세원의 부정확성을 줄이고 체납율을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이 시스템은 민원정보시스템의 모범 사례으로 꼽히면서 서울시 전체 민원종합전산망의 모태가 된다.

뿐만 아니다. 김 사장은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인허가 및 세외수입 관리업무 전산화에도 착수, 1000여종의 인허가업무와 388종의 세외수입 관리업무를 전산화한 ‘면허세 세원관리시스템’ 등을 선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시스템은 세금납부현황 파악에 걸리는 시간을 3개월에서 1주일로 단축시켜 전국 지자체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구청 내부 인력만으로 건축행정정보시스템을 개발, 건축물 인허가·도면관리·통계·건축자재수급·구난관리 등 건축행정의 전 과정을 정보화한 것도 행정 분야에서 김 사장이 일궈낸 쾌거다. 그전까지만해도 지자체 행정업무의 절반 이상이 건축관련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업무프로세스 탓에 정보화는 언감생심이었다.

이 뿐일까. 가장 성공적인 지자체 정보화 프로젝트로 손꼽히는 강남구청 스타(STAR) 프로젝트도 김 사장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공무원시절 그가 쌓은 행정정보화의 경험과 노하우가 총집결된 프로젝트로 최근에는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 이 모델을 도입키로 하면서 전자정부 수출의 교두보로 자리매김할 태세다.

그러나 김 사장을 ‘달인’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단지 결과물이 성공적이었다는 데 있지 않다. 그가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7-80년대는 정보화에 대한 공감대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인 데다 전산직 공무원에 대한 차별과 무시가 상상외로 거세 정보화 추진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동료 공무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행정정보화의 필요성을 끈기있게 설득했다. 특히 업무 추진시 보여준 철두철미함은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의 수준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시청에 들어간 그는 가장 먼저 자동차세 관리업무 전산화를 맡았다. 당시는 전산실 메인프레임에 마그네틱테이프를 꽂아 돌리던 시절.

“3달에 한번 10만 건에 달하는 자동차세 고지서를 뽑으려면 전산실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그때 얻은 별명이 ‘철야 김’입니다. 밤샘을 밥먹듯 했기 때문이죠.”

김 사장은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도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업무지시사항을 받아적게 해 시청에 전달하고 산후 조리 중에도 남편에게 관련 서류뭉치를 실어나르게 했다. 심지어 후배 직원이 아내가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 가려하자 “일도 마무리하지 않고 어딜 가느냐”며 가로막아 원성을 사기도 했다.

창업 후에도 김사장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운영하는 솔리데오시스템즈의 직원들은 외부감리보다 내부감리를 더 무서워 한다. 강남구청 정보전략계획 수립사업인 스타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솔리데오시스템즈는 자기네 마음에 들어야 철수하는 회사”라는 칭찬아닌 칭찬을 들었을 정도다.

그는 직원수 70여명의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이 된 지금도 현장에서 산다. 민원행정시스템 표준소프트웨어(1999), 건교부 건축행정정보시스템(2000), 강남구 종합정보화사업(일명 ‘STAR’ 프로젝트)(2003), 서울시 건축통계지원시스템, 고양시 종합정보화사업(일명 NICE) 등 솔리데오시스템즈가 주도한 주요 정보화 프로젝트에서 김사장는 실질적인 프로젝트관리자(PM)였다.

특히 건축행정정보시스템의 지자체 보급 확산사업을 맡았을 때는 지자체 공무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시스템 도입 필요성과 사용법을 알렸다. 지난 3년간 그간 탄 국내선 비행횟수는 100여회, 자동차 운행거리도 13만㎞에 달한다. 최근에는 식약청이 주관하는 ‘식·의약품종합정보서비스’의 정보전략계획(ISP)을 수립하느라 얼굴이 반쪽이 됐다.

그렇다면 과련 달인이 말하는 행정정보화의 관건은 뭘까. “행정정보화의 1차적인 목표는 공무원이 일하기 편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가 공무원 생활을 오래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공무원이 편해져야 궁극적인 목표인 민원혁신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거든요.”

공무원보다 더 공무원 같은, 공무원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김숙희 사장은 오늘도 행정정보화의 현장에서 밤을 지세며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약력]▲1955년 3월 25일생 ▲1974년 서울시청 입사 ▲1979년 우수공무원 표창 ▲1984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94년 은평구청 근무(민원행정시스템, 세외수입관리시스템 등 개발) ▲1996년 지방행정전산회 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 ▲1997년 전산소프트웨어개발 경진대회 최우수상 ▲1998년 솔리데오시스템즈(구 오주정보기술) 대표이사 취임 ▲2003년 강남구청 정보전략계획 수립사업 및 강남종합정보화 1,2단계 사업 추진(대통령상 및 국무총리상 수상)

*내가 본 김숙희 사장-LG엔시스 박계현 사장

내가 김숙희 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 쯤이다. 회의실에서 어떤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민원행정’, ‘세외수입’ 같은 낯선 용어를 구사하며 직원들을 거의 다그치고 있었다. ‘깐깐한 고객’이거나 ‘당찬 프로’겠거니 하면서도 그 압도할 듯한 기운에 잠시 넋을 놓고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5년 후, 내가 LG전자의 컴퓨터사업 책임을 맡으면서 김숙희 사장과 비지니스 파트너로서 처음 대면했다. 알고보니 그 때의 그 ‘깐깐한 고객’이 바로 그, 솔리데오시스템즈 김숙희 사장이었다.

곁에서 지켜 본 김 사장은 한마디로 깐깐 그 자체다. 스스로 `대나무가 쪼개지는 성깔’이라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수주한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면 관련된 공무원이든 업체직원이든 가리지 않고 난상토론과 언쟁을 벌인다.

특히 남들은 대충 넘기는 세밀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챙기는 억척스러운 열정이 놀랍다. “완성된 프로젝트가 모두 내 자식 같다”고 말할 땐 영락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수주한 프로젝트마다 어찌나 고생을 하고 정을 쏟는지 곁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이런 열정 덕에 그녀가 손대는 사업마다 예외없이 모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김숙희 사장은 중국 당태종의 ‘정관정요’를 인용하며 “지도자의 마음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방심하면 병은 더 악화되기 십상이다. 천하가 조용할 때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생각하고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만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의 생활태도가 꼭 이렇다.

실제로 김 사장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천하가 조용할 때) 중앙정부나 자치단체가 꼭 필요로 하는 `민원행정시스템`이나 `세외수입관리시스템` 같은 공공프로그램을 생각해 냈다. 일본에서도 탐을 내는 강남구 STAR 프로젝트 등도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김숙희 사장을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몇 년 후의 그림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시스템이란 살아있는 생물처럼 진화한다”는 그의 지론처럼 늘 새롭게 변신하는 김숙희 사장과 솔리데오시스템즈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