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과학의 달’ 4월의 단상

새봄의 따스한 햇살에다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나는 4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토머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된다. 황폐한 곳에서 힘겹게 새싹을 틔우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5부에 이를 정도로 긴 시여서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 첫 구절은 4월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회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시인 신동엽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표현했다. 4·19혁명의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시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4월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시인들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4월은 뭔가 뜨거움이 솟구치는 계절이다. 새봄의 설렘과 변화에 대한 기대가 어우러져 새출발하고 싶은 충동이 이는 달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4월은 기념일이 다른 달에 비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신문의 날, 보건의 날, 장애인의 날, 과학의 날, 정보통신의 날, 법의 날 등 공식적인 것만도 10여개에 달한다. 또 정부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과학의 달’로 지정, 과학의 날을 전후해 다채로운 과학행사를 벌이면서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4월이 잔인한 달이라기보다 ‘과학의 달’로 각인되고 있다.

 이런 4월이 올해는 그야말로 ‘격변의 달’이었다. 다양한 과학행사는 열렸지만 앞을 내다보기 힘든 탄핵정국에다 총선이라는 국가적 대사가 벌어진 탓도 있다. 그러나 4월이 시작되는 첫 날만 해도 기존 틀을 깨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큰 사건이 여럿 있었다. 한·칠레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정식으로 발효됐고 위성과 인터넷을 통한 EBS 수능강의가 시작됐다. 최고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고속철도도 개통됐다. 또 이달 중순에는 총선으로 국회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되면서 종전과 달리 여대야소의 정국으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정치, 경제는 물론 교육, 교통 등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큰 변혁을 가져온 것이다.

 칠레산 농수산물이 무관세로 들어와 시장에서 여느 수입 농수산물처럼 버젓이 팔리고 있다. 세계적인 교육열과 인터넷 강국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인터넷 수능강의를 보기 위해 등록한 학생들이 이미 수능 응시생보다 많은 7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고속철 개통으로 낭만적인 기차여행은 옛 이야기가 되고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들어서게 됐다.

 이처럼 한·칠레 FTA나 인터넷 수능강의, 고속철도는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만한 사안인데도 모두 만우절에 발효되고 개시된 때문인지 거짓말처럼 조용하다. 새로움에 빨리 길들여지는 우리의 습성 때문인지 미래의 이정표로 여길 정도의 변화인데도 벌써 일상사처럼 얘기될 뿐이다. 한편으로 보면 우리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학의 달’마저도 과학기술계에 이목이 쏠리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아쉬움을 준다. 단순히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총선까지 겹쳐 그냥 묻혀버린 것으로 치부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엔 왠지 씁쓸하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이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고 또 이공계 문제 등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리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해 다시 우리 공통의 화두인 미래와 과학기술을 얘기하고 연구개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잊어버린 ‘과학의 달’을 찾아야 한다. 과학기술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이나 인간다운 삶 모두 과학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곳에서 외치고 있는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도 기술경쟁력 확보 없이는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