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열린 민관합동 스팸메일대책위원회에서 스팸메일을 50%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법·제도 정비는 물론 불건전정보 차단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등 스팸메일 발생에서부터 전송, 수신에 이르기까지 과정 전체를 놓고 단계별로 스팸메일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실효성마저 기대된다.
사실 스팸메일 문제는 어제 오늘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번 회의에서도 거론됐지만 그동안 여러 대책으로 스팸메일이 다소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불법 정보유통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금칙어나 주소(URL)를 활용해 스팸을 막아주는 기존 차단 소프트웨어가 있지만 대량으로 날아오는 스팸메일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은 갈수록 스팸이 지능화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엔 당국의 단속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발송지 추적이 어려운 해외에 서버를 두거나 남의 서버를 도용해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가하는 신종기법까지 판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어서 이에 대한 대책이 급한 상황이다.
스팸메일로 인한 폐해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e메일 계정당 스팸메일 수가 하루 20통 이상이고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연간 5조원을 웃돈다는, 한 온라인시장조사업체의 분석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5조원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25개나 지을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낭비인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바이러스를 첨부한 스팸 때문에 컴퓨터가 도미노식으로 감염되는 일이 허다하다. 전세계 바이러스의 90% 이상이 e메일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스팸 폐해가 단순히 생산성 저하만의 문제가 아님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가 결코 능사라고 할 수 없지만 이런 스팸메일의 폐해를 생각하면 수신자가 사전에 동의한 경우에만 보낼 수 있는 이른바 ‘옵트인(Opt-in)’제도를 전화나 팩스에 한정해 도입할 게 아니라 e메일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인터넷 강국으로서 정부가 중소 상인들에게서 마케팅 기회를 강제로 빼앗을 수 없다는 논리는 이해하지만 이로 인한 네티즌의 피해가 너무 막대하기 때문이다. 스팸메일이 상업적이기보다 음란성이 많아 청소년의 정신건강도 크게 해친다는 점에서 무작위로 전송되는 스팸메일은 막아야 한다.
특히 실효성 없는 사후수신거부 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복잡한 규제를 동원하느니 사전에 불법적인 메일은 규제하되 합법적인 마케팅은 보호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인터넷 규제에 소극적이던 미국이 수신자의 사전 허락 등 강력한 규제를 담은 캔-스팸(Can-Spam) 법안을 만들어 미 의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옵트인을 도입한다고 e메일을 통한 스팸메일이 근절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 이번에 도입하기로 한 ‘사업자 자율규제 평가제’ 등을 통한 인터넷 사업자의 협력이 더해지면 스팸메일은 정부의 목표대로 50% 감소시킬 수는 있다고 본다.
해외 서버를 통해 발송되는 스팸메일에 대한 근절대책도 시급하다. 이는 국내 규제만으론 될 일이 아니며 유사한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국가와 국제적 연대를 하는 방안이 효과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