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또 다른 초고속인터넷 경쟁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초강국임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는 우리가 아는 바와는 또 다른 초고속 인터넷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의 초고속 인터넷은 주로 가정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런나 세계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다 더 관심을 집중하며 뜨거운 경쟁을 하는 것은 연구개발 인프라로서의 초고속 인터넷망이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연구개발의 패러다임이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자기의 실험실이나 연구소에 값비싼 장비나 시설을 보다 많이 구비하는 것으로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경쟁력이 확보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연구시설들을 강력한 초고속망으로 네트워크화해 한 연구소에서 다른 대륙에 있는 천체망원경·고에너지 가속기·기상측정기를 원격 조정하며 실시간으로 측정 데이터를 수집, 대륙에 흩어진 남의 슈퍼컴퓨터로 계산하고 실험 결과를 자신의 영상 단말기에 실시간으로 도시해 볼 수 있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기술 수준이 고도화됨에 따라 연구개발 장비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요구되고 세계 초일류 연구소라도 모든 장비와 시설을 다 구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연결돼 있다면 또한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미국, 일본, 스위스, 프랑스, 영국, 독일 등 각국의 선진 과학 기술자들은 협력해 보완적인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강력한 초고속 인터넷으로 실험 장비 및 컴퓨팅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감히 상상도 못했던 엄청난 연구를 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전환으로 이뤄낸 성과 중 하나가 바로 ‘게놈 프로젝트’였다. 100년 넘게 걸릴 연구를 그렇게 빨리 이루어 낼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초고속망에 의한 천문학적 크기의 데이터의 긴밀한 공유였다. 연구기술 패러다임의 혁신은 고에너지 물리, 천체 우주, 바이오 등 순수 과학 연구에 국한되지 않고 기상 측정, 재해 예고, 원격 의료시술, 사이버 문화공연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HDTV 영상과 5.1채널 오디오로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에서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영화도 스튜디오 품질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교환하면서 브로드웨이, 서울, 홍콩, 뭄바이에 흩어진 제작소에서 실시간 협동작업으로 개발될 것이다. 한국의 전통예술 공연의 감동이 실시간으로 뉴욕, 파리, 바르셀로나의 관중을 한꺼번에 사로잡게 될 것이다.

 전용 초고속인터넷망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과학기술 연구개발 인프라를 미국은 ‘사이버 인프라스트럭처’라고 부른다. 무한 기술 경쟁시대에 이러한 사이버 인프라가 중요한 기반시설임을 인식해 선진 각국은 연구개발 초고속인터넷망 구축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미국과학재단(NSF)은 올 7월을 마감으로 소위 IRNC(International Research Network Consortium)라는 사업으로 세계 연구개발망 구축 신청을 받고 있으며 이에 답해 유럽,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을 관통해 세계를 고리 모양의 10Gbps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잇는 ‘글로리아드’ 및 ‘트랜스팩’ 사업이 기획되고 있다. 유럽 또한 자신의 10Gbps 범유럽지역연구망(GEANT)의 세계화를 위해 ALICE(America Latina Interconectada Con Europa), 한국-유럽간 초고속정보통신망(TEIN) 등의 국제망 사업으로 남미와 아시아를 엮어 나아가고 있다.

 우리도 일본·중국으로의 10Gbps 링크를 구축하는 한편 남으로는 동남아와, 북으로는 북한·러시아로 뻗쳐 나가는 소위 십자가(+) 전략으로 연구개발 초고속망 구축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동북아 허브의 핵심이다. 핵심 원천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지금 우리가 급변하는 연구개발 패러다임을 인지하고 국내 과학기술 연구개발 환경의 고도화를 꾀해야 하겠다. 과기부, 정통부, 산자부, 문화부 등 관계 부처의 범 부처적 협력을 통해 또다른 초고속인터넷망 및 사이버 인프라 구축의 세계 경쟁 대열에 우리나라가 때를 놓치지 않고 당당하게 합류할 수 있도록 신속한 대응이 기대된다.

 <김대영 충남대 교수/한국첨단망협회(ANF) 집행위원장 dykim@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