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쟁력’은 R&D에 달렸다

한·중·일 3국의 전자산업 경쟁력 수준은 작년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이 일본보다 2∼3년 뒤지고 중국에 비해서는 4년 이상 앞서 있지만 그 격차는 계속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우리 기술이 일본을 따라붙는 것만큼 거대 화교 자본을 앞세운 중국도 엄청난 기세로 우리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등 동북아 3국이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쫒고 쫒기는 숨 가쁜 기술 경쟁 레이스를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중·일 3국은 전자제품 생산에서 세계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할 만큼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산뿐만 아니라 세 나라는 세계 수요의 25%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동안 한·중·일 3개국의 전자산업은 상호의존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것은 일본이 신기술 개발, 한국은 생산기술, 중국은 조립가공기술이 상대적으로 발전한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쟁체제로 전환되면서 중국은 한·일 두 나라를 위협하는 라이벌로 급부상하며 시장 판도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메모리·TFT LCD·PDP 부문에서 일본을 1년 이상 앞서 있으나 비메모리 분야는 발전 속도가 더뎌 일본보다 3∼4년, 2차 전지와 광스토리지·노트북·에어컨 컴프레서는 1년 정도 뒤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위협적인 경쟁상대로 떠오른 중국이다. 비록 첨단 분야에서 우리와의 기술 격차가 4년 이상 뒤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탄탄하게 축적된 아날로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선진국과의 첨단 기술 격차를 줄이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데스크톱이나 백색가전의 경우 이미 우리나라와 일본을 따돌린 것을 보면 중국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첨단부품과 핵심기술에서 한수 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과 우리를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는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가 자랑하고 있는 휴대폰을 포함한 몇몇 첨단 기술 제품 의 경우도 향후 몇 년 후면 중국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고 보면 우리가 힘써야 할 데가 어디에 있는가는 자명해진다. 정부가 우리 상품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다각적인 정책과 투자 계획을 서둘러 내놓고 있는 것도 중국과 같은 경쟁국과의 싸움에서 밀리면 우리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산업 관련 부처들은 비상이 걸린 전자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차세대 먹거리 신성장 동력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투자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제대로 조율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학재단이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연구개발(R&D) 투자비용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R&D 투자가 ‘빛 좋은 개살구’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비율로는 세계 5위 수준이지만 총액 규모로 볼 때는 1위인 미국의 고작 8%에 불과하다. 더구나 경쟁국인 일본의 20%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할 때 기술 경쟁력 강화라는 우리의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R&D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없이는 남과 경쟁할 튼튼한 ‘기초체력’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투자 없이 2만달러시대는 결코 저절로 굴러 들어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