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 간 표준 종속국의 지위에 속해 있던 우리나라가 이제 미래 기술경쟁력을 좌우하는 나노기술 분야 국제표준화를 주도하기 위한 힘찬 도약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산업경쟁력 면에서 국제적으로 12위(2003년 7월 국민총생산 기준)라는 높은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기술경쟁력의 최우선 현안이 되고 있는 ‘표준’ 분야에선 국제규격을 수용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국제표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만큼 국제표준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힘들고 험하며 단시간의 투자보다는 장기적인 면에서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시대의 표준은 공업화 사회가 도래해 대량 생산화됨에 따라 호환성·편의성·원가절감 및 품질향상에 의한 대량 생산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나 1990년대 이후 WTO 체제의 출범과 함께 기술경쟁이 가속되면서 세계 시장에서의 원활한 상거래를 목적으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국제규격을 국가규격으로 채택하도록 회원국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표준은 산업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무역상 기술장벽(TBT:Technical Barriers to Trade)을 타개하는 등 국가 경쟁력의 핵심 기반구조가 됐고 각국은 세계 시장확대를 위한 국제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국가 전략으로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최근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미래핵심기술 분야에서도 기술개발뿐 아니라 표준선점을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들 제품 대부분이 나노기술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어 이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나노기술은 10억분의 1m(1㎚)의 크기로 물질표면의 원자단위 변형 및 초집적회로의 가공, 계측 및 유전자 구조분석 등 그 응용분야가 광범위해 21세기 새로운 성장동력 엔진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2015년경에는 1조달러 이상(미국 과학재단)의 엄청난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한 국제표준 선점을 위한 노력은 국가의 미래 신산업 분야 성공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그간 이 같은 나노기술의 표준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부족했으나 최근들어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나노기술 응용제품인 반도체 분야에선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반도체소자분야(TC47) 간사국을 수임하고 국제규격을 제안하는 등 국제표준화 활동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한 지난 4월에는 반도체(D램)분야 세계 제1위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1999년 이후로 두번째로 반도체 소자의 초정밀 나노분석방법을 국제규격으로 제안함으로써 생산량과 더불어 국제표준면에서도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기술표준원이 주축이 돼 제안한 원자현미경 분야의 기술분과위원회 설립안이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인준됨에 따라 나노기술 분야에서 제품표준뿐 아니라 기술개발을 위한 분석표준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원자현미경 분야는 미지의 나노세계를 열 수 있는 열쇠로서 수천만배의 배율로 개개의 원자를 관찰 및 변형, 제조 등이 가능하므로 나노기술 분야에 있어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번에 새로 설립된 분과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전문가가 간사는 물론 의장까지도 수임해 원자현미경 분야 관련제품과 기술에 대한 국제표준을 총괄 관리하게 됨에 따라 실질적인 나노기술 및 표준에 대한 주도는 물론 국제표준의 흐름을 관장하는 허브 역할로의 도약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ISO에서의 간사국 수임은 우리나라가 국제표준화기구에 가입한 지 40년 만에 한국의 제안으로 신설된 분과위원회로는 3번째이다.
미래는 나노기술의 전쟁시대가 될 것이다. 미래 원천기술의 상당부분이 나노기술에 근거할 것이 자명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산·학·연·관이 모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함께 협력해 나노관련 기술개발과 더불어 관련 표준화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을 확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술표준원 기간산업기술표준부장 김선호 ksh@at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