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불황의 긴 터널에서 헤매고 있다. 요즘 이 상황이 계속된다는 의견과 빠져나올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와 달리 주변국들은 새로운 바람을 타고 있다. 일본은 불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의 길로 들어섰고 중국은 고속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전세계 총생산(GDP) 증가의 약 15%를 중국이 차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가 불황의 터널을 빨리 탈출하기 위해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잘 풀어 나가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중국은 방대한 시장 수요, 저렴한 인건비와 코스트 등으로 성장 잠재력이 풍부하다. 특히 중국이 새로운 IT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선진 우수기업들이 앞 다투어 진출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진출 업체들이 대부분 반도체 산업 등 첨단산업에 집중되면서 중국의 기술습득과 전파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급성장은 중국과 수교를 맺은 지 12년, 교역 규모 600억달러인 우리에게 기회와 동시에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물론 3, 4년 전부터 우리기업들의 중국 진출도 ‘골드러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줄을 잇고 있다. 고비용 탈출과 잠재시장 선점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중국 시장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필자는 최근 중국 허베이성, 산둥성, 저장성 등 3개성 신식산업청과 주요 IT산업단지, 한중 IT 합작기업 등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대략 우리나라의 면적과 인구에 버금가는 규모인 개별 성마다 IT산업 육성, 정보화 계획을 알차게 추진하고 있음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중국은 정보보호·네트워크인프라·SW 등 전 분야에 걸쳐 급성장하고 있었으며, 기술적인 면에서 오히려 우리나라를 앞선 분야도 많았다. 중국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모 사장은 “10년 후에는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으로 가서 돈을 벌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달 27, 28일 이틀간 제2회 한·중 경제심포지엄 기간에 열린, 양국 기업인들과 중국 지방정부 관료들간 경제 교류에 대한 토론은 국내 기업들의 중국진출 어려움을 토로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국내 기업인들은 중국이 자국민 보호 정책에 따라 외국인의 직접 투자 여건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시장 규모만 보고 피상적인 지식으로 섣부르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국에 진출해 성공하기 위해서 사전에 진출 희망지역과 업종, 현지 관행, 구매력 등을 조사한 후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장점까지 파악하는 철저한 준비작업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또 중국업체와 사업할 경우 계약서도 주체가 애매한 경우가 많은 만큼 반드시 정부 기관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중국기업의 경쟁력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선진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로 인해서 갈수록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반면 IT산업 분야에서 우리기업의 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상태다. 이로 인해 우리 기업의 입지는 갈수록 더욱 축소되고 자칫 잘못하면 우리 산업이 상대적으로 도태될 우려도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정부와 산업계, 연구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산업계와 연구계는 보다 앞선 기술개발을 통해 해외 투자 유치와 경쟁력 강화에 노력해야 하며, 정부는 흐름에 맞는 정책으로 산업계를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칫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노사문제의 원활한 타결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규제보다는 새로운 서비스 창출에 발맞춰 표준화와 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허베이성의 어느 관리가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를 접수 후 15시간 만에 해결한 기록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터널을 만나게 된다. 어둡고 답답한 터널은 빨리 지나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그 답답한 터널은 산을 질러 나가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긴 터널을 통과한 후 높고 험한 산을 뒤돌아 보았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명선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부회장 sun21@kait.or.kr>